잔디 병의 이름과 작명의 비밀
누구나 태어나게 되면 이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름을 지을 때 우선해야 할 기준은 무엇일까?
부르거나 듣는 것이 편하면 될 것 같지만 이름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마다 많이 다르다. 작명가가 따로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이름은 가족 중 한명이 짓건 작명가에게 맡기건 간에 보통 미래에 대한 진로나 바람의 의미를 담아서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으로부터 그 사람의 이미지와 성격을 어느 정도 유추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가장 좋은 잔디 병명(病名)은 병 정보를 알기 쉽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존의 잔디 병명을 살펴보면 잔디에 나타난 병 증상을 함축하거나 묘사한 것이 일반적이다.
녹병(rust, 綠病)을 예로 들어 보자. 잔디 잎에 녹이 슨 것처럼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갈색마름병, 동전마름병, 설부병, 황색마름병 등의 병명으로부터 각 병의 증상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또한 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균의 이름을 병명에 붙이는 것은 국내외에서 일반적이다.
잔디에 병을 일으키는 Rhizoctonia(라이족토니아)나 Pythium(피시움) 균은 학자들에 의해 작명하는데 자주 사용된다.
라이족토니아 잎마름병, 피시움 마름병 등이 전형적인 예다. 증상과 병원균 정보를 동시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병명에 병원균 이름을 넣었을 경우 다른 병원균에 의해 발생되는 유사 증상과 구분이 되기 때문에 살균제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
많은 분야에서 식물 병보다 동물 병에 대한 연구 역사가 오래되고 깊다. 그래서 동물 병명으로부터 유래한 식물 병명이 적지 않다.
텔레비전의 역사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역병(疫病)은 예로부터 인류에게 크게 위협적이었다. 역병은 고추나 호박 등 많은 식물에서도 자주 문제가 된다.
최근 주한미군에 의한 `배달사고'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탄저균(탄저병/炭疽病)은 인간에게는 상상하기도 무서운 병이다.
탄저병은 잔디와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에게도 반갑지 않은 대상이다.
하지만 위의 두 가지 사례처럼 동물과 식물의 탄저병은 병명이 같다 하더라도 병원균은 다르다. 예를 들면, 동물의 탄저병은 세균에 의해서 발생하며, 식물의 그것은 곰팡이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러니 혹시나 했던 독자들은 안심하시라! 잔디 탄저병균은 사람에게 전혀 해(害)가 되지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잔디 병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여름철 한반도 기후가 점점 더워지고 습하게 바뀌면서 병원균에게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골프장에 식재되어 있는 잔디의 종류는 작물의 그것처럼 다양하지 않다. 작물에 비해 재배 양식도 훨씬 단순한 편이다.
따라서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이 다르더라도 유사한 증상이 적지 않다. 새로운 병이 발생했을 때 이름을 짓는 것이 그만큼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곳곳에 잔디 면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병 정보와 증상을 담은 이름으로 짓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장석원 교수
한국골프대학 골프코스매니지먼트과 교수, 고려대학교 농학박사,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매사추세추대학교 연구원, (사)한국잔디학회 상임이사, 감사 및 편집위원, (사)한국잔디협회 학술이사, 서울월드컵경기장 자문위원,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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