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정원에서는 마당을 비운다
내가 만드는 정원에서는 마당을 비운다
  • 이계윤
  • 승인 2019.05.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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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빛을 담은 작은 정원

-김용택 knl 환경디자인스튜디오 대표

고요함이 보인다. 마당이 비어있어 텅빈 고요를 느낄 수 있다. 먼 풍경으로는 열려있어 적요함이 느껴진다. 정원이 단순하다 보니 자연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 보아야 알 수 있고 자세이 보아야 느낄 수 있다. (국립수목원 진화속의 정원)

김용택 대표(사진)는 섬세하고도 감각적 공간감을 지닌 조경가이다. 땅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잘 파악하고 본인 감각과 잘 버무린후 소재를 동원해 공간을 연출한다. 작품의 일관성은 김 대표의 높은 수준 공간감으로 유지된다.

그가 무슨 나무를 쓰는지, 무슨 포장지를 쓰는지 궁금해 해봐야 크게 소득될 게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연출력이 발휘된 세련되고 편안한 공간 그 자체다.

김용택 대표는 조용한 성품의 조경가다. 그 작품 역시 요란스럽지 않고 비교적 무게감 있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공간의 틀을 구성하는 감각과 현장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지휘만큼이나 인정받는 김 대표의 능력은 공간의 톤과 뉘앙스를 조절하는 디테일적 감각이다.

이번에 출간한 ‘빛을 담은 작은 정원’(펴낸곳:픽셀하우스, 오른쪽 사진)은 knl의 첫번째 작품집(2001~2011년)에 이어 두번째(2012~2018년) 엮은 것으로 여기에는 국립수목원, 청와대 사랑채, 윤동주 문학동산, 평창동 주택, 분당동 주택, 호시담 카페, 마음치유 사랑병원, 여풍재 경여루, 서초호텔 등 40여곳의 작업 내용을 담았다.

김용택 대표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환경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부터 ‘조경설계 서안’에서 실무경험을 쌓았으며, 2001년 부터 knl 환경디자인 사무소를 설립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편집자)


비워진 마당에 빛을 담다

언덕위의 정원 호시담 팬션

내가 만드는 정원에서 땅의 형상은 어릴 적 고향 집 앞산을 닮았다. 또한 넓게 펼쳐진 정원은 집 앞에 있던 논처럼 편안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자연과 많이 접하며 지내온 내 어린 시절이 지금의 직업으로 연결된 것 같다.

공사를 할 때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해 두고 정원을 만들지 않는다. 나는 현장을 세밀하게 보고 어울리는 공간을 구상한다. 정원을 만들어 가면서 현장에서 느낀 새로운 비례를 찾아 시설물을 놓고 식재를 한다.

단순한 부대조경이 아닌 건축과 일체화된 모습으로 자연 속에 편안히 서 있도록 한다. 건축하며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고 좋은 공간이 되게 한다.

책을 읽거나 답사를 가거나 혹은 공사를 하면서 건축 구조와 표현 방식을 익혔다. 건축의 디테일에 따라 조경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만드는 어느 정원에서든 마당을 비운다. 그리고 그곳에 집 앞과 저 멀리 원경으로 보이는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내 조경 방법이다. 비워진 마당에 빛을 담는다. 멀리 있는 풀은 빛으로 반짝이고, 가까이 있는 꽃은 잔디 또는 흙을 배경으로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빛과 물과 바람의 정원을 그리다

세종 푸르지오 물과 바람의 정원

식물은 빛을 받아 반짝이기도 하고 투명하게 투시 되기도 하며, 때로는 강렬하게 반사한다. 식물의 질감과 색감은 빛에 따라 달라진다. 그 색감을 적절히 연출하고 질감을 풍부하게 해줄 때 정원은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된다.

빛을 이용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료는 억새(grass)다. 억새는 어느 곳에서나 잘 어울리며, 바람에 흔들리는 잎과 줄기는 빛을 연출하기에도 매우 좋다.

꽃과 억새를 잘 매치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조경 방법이다. 꽃들은 자연의 보석들이다. 자체로 발광한다. 빛을 고려하여 꽃들의 위치를 정확히 정하게 되면, 특별한 감성이 담긴 풍경을 볼 수 있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역광에 반짝이는 잎들, 겨울의 시커멓고 가녀린 실루엣을 보면 생명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빛이 없다면 그런 것들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그림자를 연출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집과 수목이 잘 어울리는 것은 나무가 빛과 그림자를 연출하는 적지에 놓였을 때다. 나는 꽃들과 수목들을 비슷한 톤으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성적 이미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것 같다. 20여 년 정원을 만들어 오며 설계가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다. 어떤 질감의 공간을 가지느냐가 중요해졌다.

특정한 질감을 만드는 것은 섬세한 디테일로 이루어진다. 분위기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나면 나는 또 다른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꿈을 꾼다.


오늘도 정원에 풀 한포기를 심다

도시의 작은 정원 아천동 주택

10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서 사무실을 시작한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매년 조금씩 일이 늘어 지금은 많은 범위의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

주택정원부터 공원, 수목원, 리조트, 오피스 등 외부공간과 실내정원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해졌다. 모든 프로젝트는 설계부터 준공까지 관여한다. 정원은 공사의 준공이 설계의 완성이다.

언제나 봄부터 가을은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다. 휴일에도 거의 쉬지 못하고 현장에서 전투를 한다. 아마도 다른 정원가들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설계와 공사를 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시간을 조절하기가 어렵다.

관리도 해야 하고 자재도 구해야 한다. 기한에 맞추어 전투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요하다. 작은 정원도 생각보다 일이 많다. 정원은 좋으나 정원일은 고되다. 그러나 완성의 즐거움은 크다. 어둠 속에서 빛이 드러나듯 새로운 공간으로의 변화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이것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집은 아이디어의 집합이 아니라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것. 편안한 공간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인생을 더욱 풍부하고 자연스럽게 이끈다. 편안한 공간은 좋은 디테일에 있다.

그래서 나의 정원 일은 공간을 만든다기보다 오브제(object)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 살아있는 오브제다. 나의 정원은 사소한 풀 한 포기부터 정원 속에 심겨진다. 오늘도 정원에 풀 한 포기를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