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두 칼럼] 호주 골프코스 설계의 전설을 몰라본 부끄러운 기억
[하종두 칼럼] 호주 골프코스 설계의 전설을 몰라본 부끄러운 기억
  • 골프산업신문
  • 승인 2021.09.0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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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코스 설계자 알 하워드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1913년생인 그는 세인트 마이클, 타스메니아, 고스포드CC 등 호주를 대표하는 골프코스를 설계했다.

알 하워드가 100번째 생일을 맞았던 2013년에는 호주 골프 미디어들이 대거 그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해 얼마 되지 않아 영면에 들었다.

미국골프설계협회를 창립한 로버트 트랜드 존스가 1906년에 태어났으니 골프 역사와 같이한 대표적 호주 설계자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알 하워드와 만난 경험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가 있었다. 필자의 첫 직장인 스프링스GC는 호주 시드니 북쪽으로 70㎞ 떨어진 센트럴 코스트에 있었으며, 이 코스 설계자가 바로 알 하워드였다.

착공 후 시행사 사정으로 인해 9홀 공사 후 중단 되었는데, 이후 필자가 일하게 된 회사가 인수해 18홀을 완성했다.

특히 코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구덩이만 파면 물이 나와 수 많은 워터 해저드가 유지 될 수 있었고 라임스톤이 많고, 유칼리툽스 나무가 즐비해 이를 활용한 절묘한 루팅이 큰 감동을 주었다.

설계자 알 하워드를 만나게 된 영광을 가졌을 때는 추가 9홀을 시공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조금의 운영비라도 벌기 위해 9홀 운영만 하고 있었고, 클럽하우스도 임시로 만들어 사용했다. 프로샵은 임시 클럽하우스에 설치해 티 타임을 배정했고, 공사장 흙이 골퍼들의 신발에 묻어 들어와 매번 진공청소기 소음으로 어수선한 시기였다.

한창 공사 준비와 벌목을 해 나가는 어느 늦은 아침, 콧 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90이 훌쩍 넘어 보이는 노 신사가 환한 미소로 프로샵을 방문했다.

“스프링스 코스 설계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당시 프로샵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하는 필자에게 그 분이 대뜸 던진 질문이었다.

골프산업 입문 초년생이었던 필자는 쑥쓰러운 표정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 했더니, 자신이 이 코스를 설계했으며 이름은 “알 하워드”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해왔다. 자기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마지막 설계 작업을 스프링스와 같이 하고 싶고, 물론 무급이어도 상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런 일이 벌어 졌다면 백번이라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극진히 모셨겠지만, 한창 공사 중이던 코스에 갑자기 찾아온 어르신의 제안에 새내기 매니저는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한참 공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연로하신 분이 현장에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고 판단한 필자는 연락처를 남기고 홀연히 떠난 그 분을 다시 찾지 않았다.

2005년 일이니 그의 나이 92세 되던 해였다. 당시 필자는 설계를 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었고, 이제 막 30세에 접어든 풋내기 골프 초년생으로 이 영광스러운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주 멍청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설계를 업으로 하는 필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생에 가장 큰 실수로 아직까지도 머리 깊숙이 박혀있다.

골프코스는 스토리이다. 우리가 말하는 명문 코스는 역사가 있고 수 많은 스토리가 있다. 골프코스로 말하고 싶은 100세 설계자가 마지막 대화를 하고 싶어 찾아 왔는데 이를 몰라본 필자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하늘 나라에서 혹시라도 내려다 보고 계실 설계자 알 하워드에게 조심스럽게 용서를 구한다. 다시 한번 이러한 기회가 온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그 또한 부질 없을 뿐이다.

JDG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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