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컨트리클럽은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장인가
안양컨트리클럽은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장인가
  • 골프산업신문
  • 승인 2022.10.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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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무 작가의 대한민국 명작 골프장 해석 (1)
연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6번홀(파5).
연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6번홀(파5).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씨의 글을 연재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골프장들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발굴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한국 명작 골프장 해석’은 ‘이야기’보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간 ‘해석’을 통해 새로운 문화 지평을 발견하는 ‘대안 비평’입니다. 한국 최고의 골프장 스무 곳을 차례로 톺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안양컨트리클럽(이하 ‘안양CC’)은 반세기 넘도록 한국 골퍼들에게 추앙받아왔다. 플레이해 본 사람은 극소수라고 알려지면서도, 대다수 골퍼들에게 ‘한국 최고’라는 상찬을 들어왔다.

그러나 이곳을 칭송하는 이들에게 ‘무엇이, 어디가, 어떻게 좋은가?’ 물었을 때 시원한 답을 듣기는 어렵다.

안양CC는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깊이 있게 ‘해석’된 적이 없다. 일부 골프 리포터들이 부분적으로 - 이곳의 기원과 소유주의 이야기, 설계 변천, 잔디와 나무 조경 관리 등에 대해 - 설명한 적은 있으나 기본 정보와 일화의 소개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른바 ‘전문 기관’들이 내는 ‘골프코스 랭킹’에서 이 골프장은 늘 국내 정상권 등위에 오른다. 하지만 그 순위가 사려 깊은 해석과 다면적 가치 판단을 충분히 거쳐 나왔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코스 랭킹 평가는 1960년대 미국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the toughest golf course)’ 서열을 매기기 시작한 데서 비롯했다.

그동안 평가 방법을 점차 개선해 오고 있으나, 여전히 ‘챌린징 코스’를 꼽는데 항목과 지표의 중점을 두고 있다. 안양CC가 이러한 방식의 평가에서 최상위권에 오르기 알맞은 골프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안양CC, 어떤 종류의 골프장인가.

골프가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운동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지구에서 가장 난해한 스포츠임은 분명하다. 골프장이 불가해한 자연(또는 자연을 재구성한 시공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골퍼 개인마다 다른 인식과 욕망이 그 시공간에 스며들어, 자연과 사람, 플레이어들 사이의 관계가 변화막측하게 얽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같은 장소는 없고 똑같은 골퍼도 없다. 같은 골프코스도 없다. 자연과 인간 욕망이 만나는 방식에 따라, 골프장은 숱한 종류로 나뉜다.

자연 입지에 따라 링크스(Links) 코스, 히스랜드(Heathland) 코스, 파크랜드(Parkland) 코스, 시사이드(Seaside) 코스, 사막(Desert) 코스, 프레이리(Prairie) 코스, 열대(Tropical) 코스 등으로 나뉘는 한편,

용도에 따라 토너먼트 코스, 비즈니스 코스, 휴양지 코스, 체육 후생시설 코스 등과 이 특징들을 혼합한 코스들도 있다.

자연 보전 또는 관리 스타일에 따라 러스틱(Rustic) 코스, 매니큐어드(Manicured) 코스로 분류할 수도 있으며, 운영 체제에 따라 회원제 코스와 퍼블릭 코스, 그 중간 형태의 데일리 피 코스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골프장들 종류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의 감성과 필요에 따라 선호가 나뉠 뿐이다. 골프 역사가 비롯된 스코틀랜드 바닷가 링크스 코스에 골프의 본질 매력이 있다는 ‘근본주의자’들과 시사이드 코스를 선호하는 골퍼들이 적지 않으나, 울창한 수림과 호수가 어울린 파크랜드 형 코스를 좋아하는 이들도 많다. 프로선수들의 대회를 치르기 적합한 토너먼트용 코스가 변별력이 높다고 해서 휴양지 코스보다 더 좋은 골프장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러한 분류에서 안양CC는 ‘파크랜드 형 매니큐어드 회원제 비즈니스 코스’라고 할 수 있다.

‘파크랜드 코스’는 내륙지대에 공원처럼 만든 것으로, 미국 내륙의 평원과 낮은 구릉 숲에 안긴 코스들이 그 전형이며, 우리나라 산중 코스들도 대개 이 분류에 든다. ‘매니큐어드 코스’란 인공적으로 깔끔하게 관리하는 골프장이다. 바닷가 사구 지형에 저절로 형성된 링크스 코스에 자연이 거칠게 다듬은 모습을 ‘러스틱(Rustic)’이라 표현하는 것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비즈니스 코스’는 골프장 분류의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사교를 위한 비즈니스 골프에 적합하도록 조성되거나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안양’ 이름의 뜻과 목적.

안양CC는 이와 같은 분류 특성과 낱낱 목적에 그 어느 골프장보다 충실하다.

평평한 지형과 완만한 언덕들이 어울려 숲이 우거진 모습은 파크랜드 형 코스의 모범 전형을 보여준다.

스루더그린(Through the green)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이 곳보다 깔끔하게 관리하는 매니큐어드(Manicured) 코스는 세계에서도 드물겠다. 비즈니스 골프 하기에도 탁월한 장점이 있다. 평지와 구릉이 은근한 리듬으로 펼쳐진 코스를 계절마다 꽃피고 물드는 나무숲이 감싸고 있다.

그 호젓한 잔디밭을 18홀 내내 편한 호흡으로 걷고 대화하며 게임하는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골프장이며 삼성그룹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 기업이 되기까지, 그 리더들의 사교와 휴식을 맡아온 클럽이기도 하다.

안양CC의 설립·운영 목적은 그 이름과 같다. 6번 파5 홀 연꽃 피는 호수를 건너는 나무다리에 이런 글귀를 새겨놓았다.

연심교(蓮心橋, Lotus bridge)

“아름답게 핀 연꽃이 부처님의 마음과 같이 편안하다는 뜻으로, 평소에 지친 심신을 안양(安養)에 와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쉬게 함.”

‘안양’은 불교에서 안양정토(安養淨土)의 줄임말이다. 아미타불이 사는 정토(淨土)로, 괴로움 없이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곳이다.

이 골프장 땅은 행정구역으로 (안양에 인접한) 군포에 속하는데, 이름을 안양으로 정할 때 이 의미를 크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설립할 때부터 한국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들을 회원으로 모으고, 그들 심신의 ‘안양(安養)’ 쉼터가 되고자 한 - ‘비즈니스 코스’라고 이해한다.

코스 설계, 리모델링에 대한 일부의 비판

1968년 처음 문을 열 때 골프코스를 설계한 이는 일본인 미야자와 조헤이(宮澤長平)였다. 그는 일본의 거장 코스 디자이너 이노우에 세이치(井上誠一) 문하에서 당시 두각을 나타낸 설계가로, 원예 전문가 출신이어서 식물 정원 조경에 식견이 높았다고 한다.

나무 가꾸기를 좋아한 안양CC 설립자 고 이병철(1910~1987) 회장이 이 능력을 받아들였던 듯하다. 그는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의 조경에도 관여했다고 하며, 후일 일본 코스 설계가 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다.

조성 공사는 당시 국내 최고 코스 전문가였던 프로골퍼 출신 연덕춘이 지휘했으며, 일본과 구미의 선진 코스에도 뒤지지 않는 한국 대표 골프장을 만든다는 목적으로 공을 들였다.

처음엔 일본 골프장들을 본받아 투 그린을 적용했는데, 1997년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Robert Trenr Jones Ⅱ)에게 수정 설계를 맡겨 원 그린으로 바꾸는 등의 리모델링을 했으며, 2012년에 부분 수정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애초에 일본정원 스타일이던 코스가 서구적인 도전성과 변별력을 점점 갖추게 되었다.

이 과정에 대하여 골프 전문가들 가운데는 몇 가지 아쉬움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첫째, 안양CC는 문화유산 같은 곳이니 옛날 모습을 보존하며 가꿔나가야 했다는 주장이다.

둘째, 애초에 일본식 정원형 스타일을 채택한 데 대한 아쉬움 섞인 비판이다.

셋째, 리모델링 할 때,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의 설계 장점들을 충분히 반영했느냐 하는 물음이다.

 

문화유산처럼 옛 모습을 보존해야 했나.

옛 모습을 보전해야 했다는 의견에는 경청할만한 부분도 있다.

나도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책에서 ‘문화유적 급 명문 골프장 - 안양CC’라고 썼으며 적잖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이 말은 골프코스 설계의 현인이라 불리는 알리스터 맥킨지 박사(dr. Alister Mackenzie 1870~1934)가 “훌륭한 골프코스는 한 나라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한데서 영향받은 것이다.

하지만 ‘문화유적 급’이라는 것이 골프장을 옛 모습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화유적’이라는 말에 묶이면 오히려 골프장의 본질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

골프장에도 ‘명품’이라는 말을 붙이기 좋아한다. 이 골프장도 한국에서 으뜸을 다투는 명품, 명작으로 불린다.

그런데 예술적 성취가 없는 것은 명품이라 할 수 없으며 모든 예술의 명작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성을 갖는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골프장이든 현재 진행형의 감동을 주지 않는 명작은 없다. 화석처럼 과거형으로 남은 골프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명문의 위상을 지켜갈 수는 없을 것이다.

삼성그룹이 세계 선도 기업으로 발전해온 데 맞추어 안양CC도 변모해야 했음은 당연하다. 그것은 세인트앤드류스 올드코스나 오거스타 내셔널 등이 긴 세월 동안 걸어온 길과 비슷하다.

삼성그룹이 가평베네스트 등 여러 골프장들을 소유·운영하고 있으니, 다른 골프장에서는 코스 자체로서의 완성도를 추구하되, 안양CC 하나만은 옛 모습을 보존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골프장은 생물체로 생장 소멸하며 관람용 유적이나 박물관이 아니므로, 동시대의 골퍼들이 선호하여 즐기고 발견하는 만큼의 생명력을 갖는다. 옛 모습이나 변모 과정은 상세하고 입체적인 기록으로도 남길 수 있다.

 

호암의 미감, RTJ의 도전성, 비즈니스 코스의 평화로움

‘(일본식) 정원형’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일본식 정원형 골프장 스타일을 채택한 데 대한 유감은 골프코스 디자이너들이 주로 제기한다. 일본 사람들이 골프를 처음 받아들일 때, 잔디밭을 가꾸어 만드는 골프장을 정원의 개념으로 해석했고, 그것을 우리나라 골프장들이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의견이다.

서구 골프장들이 자연 그 자체와 인간이 만나는 대결과 교감의 장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면, 일본 골프장들은 일본 전통 정원의 세계관이 개입한 장식적인 조경의 산책 정원처럼 조성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적 특성’을 안양CC가 받아들여 한국 최고급 골프장으로 가꿔내면서, 우리나라 골프장들이 수십 년 동안 안양CC를 모범으로 삼아 조성·관리 되었으며, 대체로 일본풍 흐름을 따르게 되었다는 것은 상당 부분 사실이다. 지금 활동하는 국내 골프코스 전문가들 중에는 이런 현실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골프장에 들인 정원 스타일을 모두 부정적으로 볼 까닭은 없다. 골프코스가 스코틀랜드 바닷가 링크스를 벗어나 내륙지대와 세계의 여러 지역에 전파되면서, 정원 조경의 개념과 기법은 - 작은 부분이든 큰 부분이든 - 골프장 조성에 도입되어왔으며, 점점 영향력을 키워왔다.

특히 18세기 영국 귀족·젠트리 영지의 장원을 중심으로 전개된 서사적 풍경 정원(Picturesque Garden) 스타일 조경 전통은 미국과 대영제국 식민지에 조성된 컨트리클럽과 골프장들에(클럽하우스 부근을 중심으로) 지속적 영향을 끼쳐왔다.

이후 조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이들이 골프코스 설계·조성에 적극 참여하면서, 지금은 정원 조성 세계관을 골프장 전체로 확대해 이상적 자연으로 재창조하려는 예술 경향까지 보인다.

‘정원형 골프장’에 대한 여러 관점

안양CC 조경이 ‘일본 정원 풍’이라고 단정하는 이들이 많으나, 그렇게 단순한 관점으로는 현재의 안양CC를 이해하기 어렵다.

‘시그니처 홀’이라 불리기도 하는 13번 파3 홀 연못과 섬 등에서 일본 전통 정원 조경 스타일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코스 전체에서 작은 일부일 뿐이다.

한 홀 한 홀, 플레이하는 시공간의 마디마디에서 다양한 스타일과 관점이 보이는데, 예를 들어 10번, 15번 홀 티잉 구역에서의 조망은 유럽 대륙 근세 양식의 통경선(Vista) 조경을 골프코스에 소화한 예로 보인다.

또 1번 홀 살구나무 사이로 들어서는 구간은 동양의 무릉도원 서사를 영국식 풍경 정원(에서 희랍 신화의 ‘엘리시움’ 이상향을 표현함과 비슷한) 관점으로 담아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한편, 그린에서 다음 홀로 이어지는 오솔길에서는 한국 전통 별서(別墅) 정원의 서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라운드하며 발걸음이 멎는 지점마다 누정(樓亭)을 세울만한 자리를 만나게 된다.

일본 스타일이든 아니든, 이러한 정원 꾸미기가 자칫 골프(코스)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는 견해도 있다.

거친 바닷가 링크스에서 변화무쌍한 자연과 대결하고 교감하는 데서 비롯된 골프의 근본 가치와 매력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이다.

링크스에서 바닷바람과 가시덤불이 하는 역할을 파크랜드 골프장에서 연못과 나무들이 맡는다거나, 경외감을 주는 바다와 황량한 사구의 경관을 산봉우리와 계곡이 대신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공적인 화단이나 장식 조형이 지나치면 본말이 전도된다는 주장이다.

골프코스 조성에서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한국 전통 건축·조경의 시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자연 속에 자리를 찾아(빌려) 들어간다는 관점이다.

인공적 조형 기법보다는 차경(借景, 주위의 자연 풍경을 끌어들임)이나 취경(聚景, 인근 자연경관을 모음) 등의 개념이 코스 설계의 이상적 맥락과 유사하게 닿는다.

안양CC가 처음 조성될 때는 주변에 건물이 없어서, 가까운 수리산과 광교산, 먼 곳의 관악산 봉우리들을 코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남쪽으로는 시야를 유장하게 틔우는 차경 기법이 적용됐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바로 옆에 대형 물류 창고들이 들어서고 아파트 숲이 산줄기를 가리게 되면서, 골프장 밖의 경관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RTJ 2세의 설계는 충분히 반영되었나.

1997년 리모델링할 때,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는 투 그린을 원 그린으로 통합하고 그린 콤플렉스를 역동적으로 조형, 도전성을 강화했다.

케이프 앤 베이(Cape & bay) 형태의 페이스드 벙커(Faced Bunker)들이 그린 앞에서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방어하는 한편, 그린 조형을 - 공략이 어려운 경합 구역과 중간 구역, 쉬운 구역이 구별·조화되도록 - 입체적으로 조성했다. 이에 연계하여 페어웨이 벙커 등 스루더그린의 전략적 조형도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코스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RTJ 2세의 생각과 손길이 제한 없이 반영되지는 않은 듯하다.

골프코스 설계가 권동영 씨는 “RTJ 2세 설계치고는 벙커들의 양감이 크지 않거나, 벙커에 비해 그린이 큰 편인 홀들이 많다. 긴장감이 팽팽하도록 정밀한 변별력을 추구하지는 않은 것 같다. 비즈니스 골프용 회원제 코스로서 편안함과 도전성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꾀한 듯하다”라고 했다.

설계가 송호 씨는 “그린 앞의 벙커를 한쪽에만 놓은 것은 나도 자주 반영하는 스타일이다. 상급 실력자는 도전하고 평범한 골퍼들은 안전한 경로를 택할 수 있도록 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도전성을 강화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드는 코스로 만든 리모델링 사례다”라고 했다.

그런 한편 귀한 나무들이 우거진 기존 정원 형태를 유지하면서 수정하다 보니, 완만한 지형 조건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RTJ 2세 설계의 역동적인 장점들을 다 적용하지 못했다고 하는 코스 전문가들도 있다.
 

샷 밸류, 난이도 - 비즈니스 코스의 특성

리모델링 할 때 코스의 샷 밸류와 난이도를 더 입체적으로 개선하려 했다면, 나무들을 많이 옮겨(숲의 모습을 변형하더라도) 홀들의 루트를 적극적으로 조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RTJ 2세는 기존에 조성된 나무 정원을 존중한다는 전제로 재설계한 듯하다. 소유주가 그렇게 주문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리모델링 작업은, 두 개의 그린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그린 콤플렉스의 도전적 역동성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린의 핀 위치에 따라 샷밸류와 난이도가 크게 달라지도록 조형하여, 다양한 어프로치 기술과 전략이 필요하도록 안배했다. 그린의 가드 벙커 뒤 경합 구역에 깃대가 꽂히면, 홀이 훨씬 길어지고 기술적인 샷의 필요성이 커진다.

그에 견주어 티잉 구역에서 랜딩 존까지의 샷 변별성은 예민하지 않은 편으로 유지되었다. 핀 위치 변화에 따라 (파4 홀과 파5 홀에서) 티샷부터의 공략 방법이 동조·변화하도록 하는 전략적 긴밀성이 높지는 않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 골프장 주인은 나무들인 것 같다. 수려하고 진귀한 수목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나무들이 계절마다 다르게 내뿜는 빛과 숨결이 동반 플레이어들을 무색하게 하는 생명감으로 다가오곤 한다. 설립자는 나무를 사랑해 한 그루 한 그루에 정을 쏟았다던데, 마치 그가 세운 호암 미술관의 소장 작품들처럼 여겼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수목 정원 풍의 조경은 선대의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이룬 미감을 최대한 살리되, 그린 공략의 전략성에서는 RTJ 2세의 도전적 스타일을 도입하는 한편, 페어웨이를 지나는 구간은 정원형 비즈니스 코스의 평안함을 유지하여 조화를 꾀했다고 하겠다.

 

한국 골프장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안양정토(安養淨土)'

예술적 콘셉트 - ‘안양정토’

골프장 정문에서 클럽하우스까지는 180미터 남짓으로 국내 골프장 진입로 중에서 가장 짧지만, 대다수 한국 골퍼들에게는 가장 먼 길이다. 실제로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군포시 8차선 대로에서 곧바로 접어들며 눈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속세의 잔영을, 클럽하우스 앞의 수백 살 백매화 고목이 털어낸다. 이 나무를 지나면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안양(安養)’은 골프장의 이름이자 설립 운영 목적이며, 또한 조경의 예술적 콘셉트라고 하겠다.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안양정토(安養淨土)’를 골프코스에 실현해 놓은 개념이다.

1번 홀 살구나무 고목들은 세속 너머로 접어드는 길을 인도한다. 티잉 구역에서 페어웨이 옆으로 이어진 살구나무 숲이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며 선경으로 이끈다(처음에 이 홀은 파5였는데, 1997년 리모델링하면서 긴 파4 홀이 되었다가 2013년 부분 수정으로 다소 짧아졌다. 편안하게 시작해 속세에서 점점 멀어지는 스토리로 보면 긴 홀이 어울리겠지만, 2번 홀에서도 벚꽃 길이 이어지는 흐름을 생각하면 지금의 짜임새가 나은 듯하다).

후반 첫(10번) 홀도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며 시작한다. 키 작은 반송 숲 사이 오솔길을 지나 피안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먼 곳 시야를 틔우면서도 코스 안쪽에 시선을 붙잡아둔 변형 통경선이 절묘하다.

이렇듯 이른 봄에 살구꽃 피는 1번 홀, 봄기운이 넘쳐날 때 벚꽃 천지가 되는 2번 홀, 매화와 복사꽃 무리가 도원경을 이루는 4번 홀, 한여름 연꽃이 가득 열리는 6번 홀 등으로 이어지며 안양정토의 서사를 코스에 펼쳐내고 있다.

계절과 사연에 따라 ‘시그니처 홀’이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다.

자연을 승화(昇華)한 재자연(再自然)

골프코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화목(花木, 꽃나무)들을 경관 요소로 활용하는 한편 초화(草花, 풀꽃)류는 코스 조경에 들이려 하지 않는 편이다. 별도의 비용을 들여 관리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경관 유지가 어려우며, 무엇보다 골프코스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가까워야 한다는 믿음 때문인 듯하다.

나 또한 (비관리 구역 야생화를 제외하고는) 코스 안에 꽃밭 가꾸는 것을 좋게 보지는 않았다. 안양CC 17번 파3 홀 아일랜드 그린으로 가는 오솔길에 이른 봄 아네모네 꽃이 피고 가을날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꽃밭 조경 관리에 감탄하면서도, ‘다른 골프장들은 이런 조경 흉내내지 말고 코스 잔디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5번 홀 실개천에 빠진 볼을 찾을 때, 돌쩌귀 사이에 보일 듯 말 듯 핀 야생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건네며 가슴에 들어왔다. 네다섯 살 때인가, 아득히 잊었던 시골 개울의 추억 잔상이 되살아나 현기증이 났다.

캐디에게 이 작은 꽃 이름을 물었더니 코스 관리 부서에 전화로 물어 ‘꽃범의 꼬리’라고 알려주었다. 15번 홀 실개천에도 흩뿌린 듯한 풀꽃들이 제멋대로, 그러나 정연하게 피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게 틀림없을지라도 자연과 분간할 수 없이 애틋하네··· 하는 마음과 함께, “이곳이 안양(安養)이라 이야기하고 있구나, 인생이 간단없는 괴로움일지라도 이 순간, 꽃 핀 여기가 안양정토로구나······”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안양중지 첨단 실험장, 최고 전시장

안양CC를 가꿔오는 과정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선별 육성하고 보급한 ‘안양중지’가 없었다면우리나라 골프장들의 개발과 코스 관리 수준의 발전은 훨씬 더뎠을 것이다.

기후 온난화로 국토 대부분이 아열대 지대로 변해가는 현실에서, 중지 품종의 존재 가치와 개량발전 필요성은 점점 더 절실해진다.

안양CC는 한국 현실에 가장 알맞은 중지의 첨단 실험장이며, 최고작품 전시장이기도 할 것이다. 좋은 계절에는 페어웨이가 최고급 양잔디 코스처럼 정밀하게 관리되기도 한다.

한편 국내에도 양잔디 코스로 조성된 고급 골프장들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한국 골퍼들이 코스와 잔디를 보는 눈높이가 향상되었으며, 안양CC는 한국 골프장의 리더로서 잔디 품질을 더욱 높여 앞서가야 한다는 기대와 숙명을 안게 되었다. 설립자의 글씨를 9번 홀에 새긴 ‘無限追球(무한추구)’ 빗돌은 그러한 소명을 선언하는 듯하다.

코스랭킹으로 순위 매길 수 있는가.

이른바 ‘코스 랭킹’으로 안양CC를 평가하려는 시도는 어긋나기 십상이다.

코스의 순위를 매기는 평가 항목, 지표와 배점 등은 ‘챌린징 코스’를 선정하는데 알맞은 방식이기에, 비즈니스 코스보다는 토너먼트 코스를 지향하는 골프장이 높은 등위에 올라야 온당하다.

하지만 안양CC는 토너먼트 코스 같은 변별력을 앞세우는 골프장이 아니다. 육칠십년 대에 ‘한국오픈’ 등의 대회를 몇차례 열었으나, 그 뒤로는 소수 회원들을 위한 비즈니스 코스로서의 정체성을 선명히 지켜 온다. 14개의 클럽을 모두 사용하여 기술과 전략을 두루 발휘하도록 만든 골프코스이지만, 변별력을 넘어 평화롭고 입체적인 조화를 지향하는 ‘비즈니스 골프장’이다. 지금까지 코스랭킹 기관들이 선정해온 안양CC의 등위는 ‘삼성그룹’과 ‘안양’이라는 아우라가 평가 참여자들의 감성에 막연히 스며든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서열을 매기는데 집착하지만, 자칫하면 골프와 골프장의 가치는 납작해진다. ‘평가’는 골프장을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낱낱의 성취 의미를 ‘판단’한 뒤에야 부문별로 시도할 만한 것이며, 그런 과정을 다 거친 뒤에라도 한데 싸잡아 순위 매기는 순간 무도해지기 쉽다.

어떤 경우에는, 마치 다빈치와 고흐, 피카소와 추사 등을 한 교실에 성적순으로 앉히려 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안양CC’라는, 하나의 ‘장르’

안양CC는 일본과 서구 명문 골프장들을 참조 모방하는 데서 시작해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왔다.

한국에 골프장들이 전파·조성되는 시대에, 코스와 조경, 잔디와 관리, 서비스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가장 높은 기준을 세우고 실천해 보임으로써 한국 골프장들의 교과서 역할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 골프장들이 대체로 일본식을 따르는 경향을 이끌기도 했으나, 나인브릿지, 트리니티 등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최고급 클럽들의 생성 토양이 되었으며, 그밖에 다양하고 특출한 골프장들이 탄생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코스의 모습을 고유하게 가꾸어왔다. ‘일본 정원 스타일’이라는 초기 특성을 갈무리하면서, 세계적 흐름의 전략적 골프코스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한편, 자연이 계절에 따라 빚어내는 절정의 모습들을 이상향 서사의 공간 속에 정교하게 담아냄으로써, 플레이어와 감응하는 자연으로서의 생명체적 시공간 예술로 재창조해냈다.

한국 골프장들은 구십년 대 초반까지 일본 골프장들을 닮으려 했으나, 그 후 이천십년 대(또는 지금)까지 서구 골프코스 흐름에 편승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은 세계적 수준 골프코스들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안양CC를 능가하는 순위로 평가되는 골프장들도 여럿 나왔다. 골프코스 전문가들 중에는 안양CC가 세계 골프코스의 본질 흐름에서 벗어난 스타일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세계 골프사 지평에서 골프장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한국골프장을 꼽으라면, 나는 안양CC를 맨 앞에 놓을 것이다. 안양CC는 한국 골프를 넘어서 고유한 - 하나의 ‘장르’라고 보기 때문이다.

 

류석무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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