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 - 궁극의 토너먼트 코스를 꿈꾸다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 - 궁극의 토너먼트 코스를 꿈꾸다
  • 골프산업신문
  • 승인 2023.04.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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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무 작가의 대한민국 명작 골프장 해석 (5)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에서는 마치 코스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다양하게 반응한다고 할까. 이 곳에서는 누구나 ‘강하고 변화무쌍한 상대와 대결하는 느낌’ 속에서 플레이하게 될 것이다.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에서는 마치 코스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다양하게 반응한다고 할까. 이 곳에서는 누구나 ‘강하고 변화무쌍한 상대와 대결하는 느낌’ 속에서 플레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작가의 글을 연재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골프장들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발굴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한국 명작 골프장 해석’은 ‘이야기’보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간 ‘해석’을 통해 새로운 문화 지평을 발견하는 ‘대안 비평’입니다. 한국 최고의 골프장 스무 곳을 차례로 톺아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는 난도 높은 골프장이다. ‘아마추어 고수(싱글 디지트 핸디캐퍼)’들도 보기플레이어 스코어카드를 흔하게 받아들곤 하는 곳이다.

어려운 골프장은 한국 골퍼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지만, 이 곳은 여느 고난도 코스들과는 차원이 다른 곳으로 평가되어온다. 음악 연주에 빗대면 초절기교 클래식 명곡의 악보 비슷하다고 할까.

2010년 문을 열어 역사가 짧은데도, 이 곳을 한국 으뜸 골프코스의 하나로 선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골프코스 평가 전문기관이 선정하는 ‘랭킹’에서 최상위에 오른 적도 있다.

이 골프코스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평가하기는 간단치 않다. 몇 가지 특성 요소들이 복합적 아우라를 띠며 형성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 요소들은 대략 다섯 가지다.

▲송도 국제도시 국제업무지구 커뮤니티 클럽 시설로서의 세계 일류 지향 골프장이라는 계급성.

▲포스코그룹의 폐쇄적 비즈니스 골프장이자 초고가 회원권 멤버십 클럽이라는 희소성.

▲잭니클라우스의 시그니처(헤리티지) 코스라는 태생적 설계 유전자.

▲신도시를 위해 개발한 간척지에 세계 최신 트렌드와 기술을 적용해 만든, 러스틱 링크스 스타일이라는 코스 정체성.

▲프레지던츠컵 등의 대회들이 열린 국제적 토너먼트 코스로서의 지명도.

(잭니클라우스GC의 정체성이자 지향점들이기도 한) 이들 하나하나를 가감 없이 직관하는 것이, 이 골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향유하는 길이다.

‘세계 초일류 클럽’이 되어야 하는 소명

잭니클라우스GC는 ‘송도 국제도시’ 개발 사업 중 ‘국제업무지구(IBD)’의 한 부분이다. 국제도시 사업은 인천 앞바다의 갯벌을 메워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개발 신도시를 만들고자 한 것으로, 1986년 인천국제공항의 배후 지구로 구상된 뒤 1991년 전체 지구 계획이 확정됐다.

인천대교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이어지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인근 갯벌의 매립이 1994년에 승인되었으나 미루어지다가, 2002년 미국의 부동산 개발 회사 게일 인터내셔널과 한국의 포스코건설이 ‘송도신도시개발(NSIC)’을 합작 설립하여 건설에 착수했다.

잭니클라우스GC도 그에 포함됐다. 국제업무지구가 세계 경제·문화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고자 하였으므로, 이 골프장은 단순한 골프 시설을 넘어 거물급 국제 비즈니스 명사들의 커뮤니티 클럽이 돼야 하는 역할을 맡게됐다. 애초부터 ‘세계 초일류 골프클럽 지향’을 전제로 조성된 셈이다.

송도 ‘국제업무지구의 얼굴’ 격 핵심 시설

미국의 개인 소유 부동산 개발회사인 게일 인터내셔널이 이러한 국가 차원의 대역사(大役事) 를 책임질만한 격과 역량을 갖추었는지는 모르겠다(게일은 이 개발 사업에서 많은 수익을 거둔 뒤, 미국에 내는 세금 문제로 법적 분쟁을 일으켜 사업을 지연시키다가, 합작 투자사 포스코건설에 패소후 물러났다).

지역 부동산 개발의 상업적 도식을 뛰어넘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세계 문명 변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창하고, 산업과 문화의 중심을 끌어와야 하는 융복합 프로젝트였다. 그에 부합하는 통찰과 소명, 국제적 인맥과 실력, 열정까지 갖춘 이들의 과업이어야 했다. 본질 목적대로라면, 국내 부동산 수요에 기대는 부분은 보조적, 제한적이어야 옳았다.

잭니클라우스GC의 목표 또한 ‘국내용’에 머물 수 없었다. 애초에는 (국내 일반 골퍼들의 회원권 수요는 일부 보조적으로 활용하고) 세계 비즈니스의 실세들을 회원·이용객으로 영입해, 국제적 스포츠 레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자 계획했던 줄로 안다. 송도 국제업무지구 활성화의 성패를 가름할 핵심 콘텐츠 시설이었던 셈이다.

프로젝트 전체의 격을 끌어올릴 ‘명품 브랜드’ 골프클럽을 만들어야 했기에, 게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네임밸류를 가진 전문가들을 불러들였다. 그 정점에 ‘골프 황제’ 잭 니클라우스(Jack William Nicklaus, 1940~ ) 가 있었다.

 

‘잭니클라우스 위의 잭니클라우스 코스’가 필요했다

단순히 ‘잭니클라우스 설계 코스’를 원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높은 가치와 세계적 이슈를 가진 골프클럽이, 송도 국제 업무지구에는 필요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니클라우스 설계 코스’는 3등급(Three Levels)으로 분류되어왔다.

▲첫째, ‘니클라우스 디자인’사의 디자인팀이 설계한 ‘더 니클라우스 디자인 코스’

▲둘째, 잭니클라우스의 아들이 설계한 ‘더 잭니클라우스 2세 시그니처 코스’

▲셋째, 잭니클라우스가 직접 설계한 ‘더 잭 니클라우스 헤리티지 코스’

(잭니클라우스가 직접 설계한 것을 수년 전까지 ‘시그니처 코스’라 했는데, 그가 설계 업무에서 은퇴한 뒤로는 ‘헤리티지 코스’로 바꿔 부르고 있다. 최근 ‘니클라우스 디자인’ 회사는 ‘니클라우스 디자인 코스’와 ‘더 잭 니클라우스 헤리티지 코스’ 두 단계로 Design Levels 분류를 단순화했다. 한국에서는 휘닉스CC를 시작으로 가평베네스트GC, 베어즈베스트GC, 그리고 잭니클라우스GC가 ‘헤리티지 코스’로 등록되었다)

‘잭니클라우스 헤리티지 코스’로도 충족할 수 없는 것 – 더 높은 차원의 브랜드 가치와 이슈가, 송도 프로젝트에는 필요했다. ‘골프 황제 필생의 대표작’-잭 니클라우스가 자기 이름을 내건 골프장을 이곳에 만들도록 요청했다.

잭니클라우스 골프 인생 만년의 ‘결정판’

잭 니클라우스는 이 골프장의 자리 선택에서부터 설계, 시공, 보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의욕적으로 관여했다. 설계 계약에서 정한 것보다 몇 배 더 현장을 방문했고 자신의 의도대로 조성, 관리되는지 세세히 살폈다.

현재 ‘니클라우스 설계’를 내세우는 골프코스는 세계에 450곳이 넘는다. 그가 직접 설계한 ‘헤리티지 코스’만으로도 세계 100대 코스에 오르내린 수작(秀作)들이 수십 개에 이르며, 그 코스들의 스타일을 한두 갈래로 특징지어 풀이할 수는 없다. 성격이 다른 수많은 장소에서 다양한 상상력의 코스들을 끊임없이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니클라우스 설계 작품 중에, 이 골프장은 그의 설계 경험과 역량이 최고조로 무르익은 때에 각별한 정성을 쏟은 작업이며, 은퇴를 앞둔 즈음에 ‘잭 니클라우스 설계의 결정판’이라고 도장을 찍듯 자기 이름을 골프장 명으로 내걸게 한 과업이었다. 송도 국제업무지구의 요청에, 스스로의 설계 인생과 이름을 걸고 부응했다고 할 수 있다.

니클라우스의 설계 방식과 본질 특징

선수 출신인 그는 다른 코스 디자이너들과는 설계의 관점과 방법이 달랐던 듯하다. 그는 현장의 매 홀 각 지점을 걷고 밟으며 직접 손으로 스케치했다.

조경이나 토목을 전공한 설계가들이 등고선 도면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것과 달리, 그는 플레이어 눈높이에서 보는 최종적인 모습(Final Appearance)을 현장에서 통찰하고 구현했다.

그의 팀에는 다양한 경험을 지닌 코스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기획·설계·조형 등의 각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며 협업하는 시스템으로 일했다. 그는 설계 전문인들의 도면 작업을 지휘하는 한편, 조성 현장에서 티잉 그라운드와 IP지점, 그린 높이와 굴곡, 벙커 위치와 모양 등을 플레이어 시각에서 그려내고 입체적으로 조정했다.

잭 니클라우스의 대체 불가한 경험과 통찰이, 마에스트로의 손짓처럼 각 부문 전문가들의 작업을 조화롭게 지휘했던 듯하다. 니클라우스 또한 뛰어난 실무자들 덕분에, 도면 속 상상에 집착하거나 현장 사정과의 타협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걸작 만들기에 전념할 수 있었을 터이다.

잭 니클라우스 설계 코스들의 본질적 성격은 네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토너먼트를 치를 수 있는 수준 높은 변별력

▲둘째, 다양한 수준의 골퍼들이 자기 실력과 성향대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재미

▲셋째, 대상지 자연의 특성을 해석하고 고유하게 재창조하는 개성

▲넷째, 코스의 용도 목적과 시대의 변화를 반영

 

태생부터 ‘궁극의 토너먼트 코스’

이 골프장은 애초 계획부터 국제 프로골프대회를 열기 위한 토너먼트 코스였다. 대회를 치르고 난 뒤 토너먼트 코스라 불리는 여느 골프장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 송도 국제업무지구의 격을 높이는 ‘명품 브랜드’ 골프클럽이 되어야 했기에, 최상급 토너먼트 코스와 세계적 골프대회 개최 이슈가 필요했다.

한평생 골프대회 속에서 살아온 잭 니클라우스는 이곳에 - 스스로의 선수 인생과 현재의 프로골퍼들이 겪어 나가야 할 미래의 도전을 담은 - ‘궁극의 토너먼트 코스’를 조성하고팠던 듯하다.

잭니클라우스GC 코스는 7470야드(레귤러티 6455야드, 레드티 5279야드) 파 72의 18홀 구성이다. 토너먼트 코스로는 길지도 짧지도 않지만, 바닷바람이 부는 자리임을 감안하면 긴 편이다.

간척지의 네모난 평활 공간에 조성한 골프장인데, 코스에 들어서면 끝 모를 변화와 시험의 요소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벙커와 호수 등 장해물 들은 골퍼의 길을 들락이며 거의 모든 샷에 영향을 준다. 그 하나하나의 위치와 형태는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플레이어와 맞선다.

잭 니클라우스는 (선수 시절에도, 설계가로서도) 전략·전술의 달인이었다. 그가 설계한 코스에는 홀마다 전략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과 만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코스에서 그런 특성은 두드러진다. 무협 이야기의 기문진식(奇門陣式)처럼 생문(生門)과 사문(死門)이 있어서, 자기 수준에 맞는 ‘생각하는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값을 치르게 하는 그의 설계 성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매 홀 매치플레이를 치르듯 다이내믹한 승부를 안배하여, 세계 정상급 프로골퍼들의 도전과 갈등을 극적으로 유발하는 한편, 그들의 전략 능력과 미세한 기량 차이까지 변별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 으뜸급 토너먼트 코스 환경

2010년 개장과 함께 미국 PGA 챔피언스투어 대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의 주요 골프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특히 2015년에, 미국과 세계연합팀(유럽 제외) 간의 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 대회가 이곳에서 열려 세계 골퍼들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잭니클라우스GC는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 골프장’이 되었다. 또한 LPGA 국가대항전 ‘UL 인터내셔널크라운’ 골프대회와 KPGA ‘제네시스챔피언십’ 등 굵직한 대회도 치렀다.

2023년 4월에는 DP월드투어(구 유러피언투어) 대회인 ‘코리아챔피언십’도 열린다.

국제대회를 치르기에 이보다 수월한 곳은 드물다(국내에는 없다). 국제공항과 숙박시설이 가깝고, 연습시설, 갤러리 동선, 중계 환경 등 제반 요소를 갖췄다.

클럽하우스 시설은 세계 토너먼트 코스 중에서도 돋보인다. 송도 국제업무지구의 지원시설이자 세계 투자자들의 모임과 국제 행사 등이 열릴 장소로 계획되었기에, 기능과 규모, 건축 수준이 압도적이다.

클럽하우스는 세계적 건축 프로젝트 경험이 많은 미국 캐논디자인(Cannon Design)의 메흐르다드 야즈다니(Mehrdad Yazdani)가 설계했고,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가 한국측 실시설계 파트너를 맡았다. (최근에는 행사 진행을 위한 일부 공간을 리모델링했다) 지구상 어떤 골프대회도 치를만하다.

특히 클럽하우스는 우아하게 물결치는 지붕 곡선이 동양 전통의 곡선감과 서구적 현대미를 함축 표현한 예술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지붕 곡선은 코스 안의 다양한 표면 언듈레이션 곡선과 연결되며 조화를 이룬다.

 

잭 니클라우스는 이 골프장에 자신의 골프철학과 설계 기술의 정수를 쏟아붓는 한편, ‘골프 황제’의 인생에서 경험한 코스들을 망라한 범세계적 미학 세계관을 펼치려 한 듯하다.
잭 니클라우스는 이 골프장에 자신의 골프철학과 설계 기술의 정수를 쏟아붓는 한편, ‘골프 황제’의 인생에서 경험한 코스들을 망라한 범세계적 미학 세계관을 펼치려 한 듯하다.

선수들도 일반 골퍼들도 ‘어려운’ 까닭

“장타와 숏게임을 조화있게 해야 좋은 스코어를 얻는 코스를 만들되, 골프는 힘보다 정확함을 가늠하는 게임이므로 힘을 시험하기보다 현명하게 플레이하는 골퍼들에게 유리하도록 한다.”

잭 니클라우스는 이렇게 밝힌 적 있다. 이 말을 ‘장타를 치는 프로골퍼보다 비거리가 짧은 일반인들을 배려한다’는 뜻으로 해석한 이도 있지만, 적어도 이 코스에서는 ‘장타 이외의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고 이해하는 게 좋겠다.

티샷에서부터 어프로치샷, 숏게임, 그린 플레이 등 모든 클럽을 사용하는 모든 상황에서 - ‘샷의 정확함’과 ‘숏게임’, 전략적 ‘현명함’ 등을 - 정밀하고 집요하게 시험하기 때문이다.

니클라우스는 이 코스를 “일반인들도 프로처럼 느끼고 판단하며 플레이하도록” 설정했다.

예를 들어, 티샷은 호쾌하게 칠 수 있더라도 페어웨이 어느 쪽 어느 구역에 볼이 놓이느냐에 따라 다음 샷 핀 공략의 방법과 난도가 크게 달라진다.

티샷할 때 그린이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티잉 구역에서 그린이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설계 철학’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는데, 과장되거나 지엽적 해석이다.

코스는 자연 속 시공간이며, 보이지 않는 목표에 접근해 가는 것도 코스에서의 자연스러운 경험 중 하나다. 눈에 보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이 잘 조화되었을 때 골퍼는 게임의 재미에 더욱 빠져들기 쉽다.

다만 그린의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으면 어느 위치에서 어프로치를 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파악하기 쉬우므로, 플레이어가 공격 전략을 세우기 유리하다. 잭 니클라우스는 선수 출신이고, 특히 다양한 샷 기량을 전략적으로 펼칠 수 있는 코스를 선호하였기에, 그런 홀들을 중심에 두었던 듯하다.

그는 티잉 구역뿐 아니라 모든 플레이 구역에서 골퍼가 ‘직접 보고 느끼도록(Look & Feel)’ 하는 직관적 배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공략 방법을 판단할 요소들을 플레이어의 눈앞에 되도록 많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플레이어가 자기 능력과 한계(비거리, 정확도, 구질, 탄도···)를 스스로 깨닫고 계발하며 플레이하게 하는 것이, 그의 설계 특징 중 주요한 하나라 하겠다.

설계가들이 흔히 ‘14개의 클럽을 다 쓰게 하는 코스’를 설계하는 것을 넘어서, 잭 니클라우스는 그 클럽들이 어떤 기술로 쓰이도록 할 것인가를 계산하고 골고루 배치했다. 페이드, 드로우, 높고 낮은 구질 등 저마다 실력이 다른 골퍼들이 자기 수준에서 도전하고 프로처럼 시도해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니클라우스의 경험을 망라한 미학 세계관

설계자의 이름값이나 코스의 기능적 탁월함으로 세계 일류 골프장이 될 수는 없다. 유명 토너먼트를 치르면 널리 알려질 수는 있으나, (코스 평가 패널 등의 전문가들에게도) 숭배받는 명 코스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세계 정상급 또는 한 나라의 최고 순위를 다투는 골프코스라면, 기능적 성취와 세간의 명성을 넘어 고유한 예술적 깊이를 품고 있어야 한다. 자연의 절대적 아름다움과 마주하는 경외감이든, 골프(인생)의 본질을 느끼게 하는 시공간의 경험이든, 역사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서사성이든 – 그런 영적 감동을 빚어낼 수 있을 때 다른 차원의 코스로 격상된다.

(이 코스에서 그런 느낌과 만날 수 있는지는, 골퍼들 개인의 안목과 경험적 판단 몫이다).

잭 니클라우스는 이 골프장에 자신의 골프철학과 설계 기술의 정수를 쏟아붓는 한편, ‘골프 황제’의 인생에서 경험한 코스들을 망라한 범세계적 미학 세계관을 펼치려 한 듯하다.

링크스, 파크랜드, 바위 언덕의 결합

코스 조경 콘셉트로 보면, 잭 니클라우스GC 코스에는 파크랜드(Parkland), 바위 지역(Rocky Area), 링크스(Links) 세 가지 스타일이 결합되었다.

‘파크랜드’ 콘셉트는 이 골프장 안에 조성되는 고급 주택(페어웨이 빌라)단지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업무지구의 성격에 맞추어, 코스 안에 페어웨이 빌라 조성(착공 예정)이 인허가되었다. 전통적 링크스 코스에서는 호수와 나무를 보기 어려운데, 이곳에 한국(동양) 전통 정원 이미지의 호수와 해송 숲을 조성한 까닭은, 코스가 페어웨이 빌라의 정원 몫을 겸하기 때문이겠다.

‘바위 지역’은 ‘링크스’와 동양풍 정원을 연결하고 조화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링크스가 해안단구 위에 있는 듯한 액센트를 준다. 거대하고 입체적인 바위들과 소나무 군락이 결합한 모습은, 링크스에 한반도 바다 언덕의 자연미를 접목한 의도로 보인다. 이 바위 조경은 미국 테마파크 조경 전문회사를 초빙하여 인공 바위(Artificial Rock) 기법으로 시공한 것이다.

 

링크스 DNA와 잭의 ‘스피릿’

전반 어반코스(Urban Course) 9홀과 후반 링크스코스(Links Course) 9홀로 구성됐다. 어반코스는 송도 신도시 고층 건물들을 배경으로 한 도회적 경관이 인상적이며, 링크스 코스에서는 바닷가 느낌의 거친 자연에서 게임의 승부를 결정짓는 홀들이 이어진다.

링크스 스타일과 파크랜드 스타일을 결합했으나, 링크스 특질이 코스 전체를 주도하고 있다. ‘링크스 유전자에 니클라우스 스피릿(Spirit)을 불어넣은 토너먼트 코스’라고 하는 게 본질에 가까울 듯하다. 코스 전체에 파도치듯 감도는 언듈레이션(표면 굴곡)과 철옹성처럼 견고한 그린이 그 특질을 선명히 드러낸다.

잭 니클라우스는 그린과 그 주위(그린 콤플렉스)를 정교하게 만든다. 특히 이 코스에서 그는 500㎡ 남짓 작은 그린을 요새처럼 구축하고, 벙커와 호수, 마운드 등으로 입체적인 방어막을 세운 뒤, 그 시퀀스를 숏게임 구간, 티샷 랜딩존 순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이 코스에서, 한 홀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그린 콤플렉스처럼 구성한 듯하다. 파4 홀이나 파5 홀이라 하더라도, 티샷부터 그린을 공략하듯 정확한 타겟을 노리도록 고밀도의 전략성을 부여했다.

페어웨이는 좁지 않지만 언듈레이션이 심하고 딱딱하며, 그린에 가까워질수록 예측 불가한 장해물들(좁아지는 페어웨이, 벙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샷 하는 위치마다 - 매번 파3 홀처럼 - 실제보다 더 위협적으로 보이는 장해물들이 심리적 위축을 부른다. 단단한 페어웨이는 장타자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은 변수로 작용한다. 러프는 깊고 질기다.

16번 파4 홀 - 잭니클라우스가 가장 사랑한 까닭

“이 홀을 잭 니클라우스가 가장 좋아한다는데, 까닭이 뭘까요?”라고 동반 캐디가 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하면서 쳐야 하고, 골퍼의 모든 기량을 발휘해야 하는 홀이기 때문 아닐까요.”라고 내가 엉겁결에 대답했다.

전장이 길고 바람의 영향도 많이 받는 파4 홀이다. 프로 선수들은 블랙티에서 300야드 이상비거리의 페이드샷을 쳐야 페어웨이 오른쪽의 벙커를 넘길 수 있고, 그 도전에 성공하면 그린 공략이 가장 유리한 각도와 짧은 거리의 어프로치 샷을 할 수 있다. 그린의 타원이 10시 방향이며 그린 앞 왼쪽에 가드벙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처럼 쉽겠나. 그린 어프로치는 페어웨이 오른편에서 공략해야 유리한 반면, 티샷의 안전한 랜딩 존은 왼쪽에 있다. 링크스 스타일 코스답게 페어웨이 10미터~20미터마다 마운드와 언듈레이션이 있고, 안전하게 친 쪽 랜딩 지역에 굴곡이 더 많다. 매 샷할 때마다 환경 변화가 크고, 컵 위치에 따라 공략 방법이 달라진다. 토너먼트에 참가한 선수들도 이 홀에서 매번 다른 샷을 구사했던 것 같다.

거듭 생각하다 보니, ‘영원히 정답 없는 문제 같은 홀이기 때문이구나’ 하는 답이 떠올랐다.

선수들이 기억하는 홀, 설계자가 지킨 원칙

2015년에 이곳에서 ‘프레지던츠컵’ 대회가 열리면서, PGA 투어 측은 코스 일부 수정을 요청하고 잭 니클라우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수정 사항은 주로 그린 언듈레이션을 평탄화하는 것이었다. 매치플레이 대회 성격에 맞춰 극적인 승부가 나오도록 도전을 유도하는 한편, 연습라운드부터 대회 마지막 날까지 핀을 다른 위치에 꽂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TV중계에서 그린이 잘 보이도록 몇 개 홀 티잉 구역과 그린 주변 높낮이도 조정했는데, 7번 홀 그린 앞 마운드를 없애도 되겠느냐고 요청하자 설계자는 일언지하 거절했다고 한다.

이 파5 홀은 장타자가 투온에 도전할 수 있지만, 그린 앞을 토성(土城)처럼 방어하는 마운드 때문에 수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특히 (마운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린 앞쪽에 핀이 꽂혀 있을 때 플레이하면, 잭 니클라우스가 수정을 거절한 까닭을 몸으로 알게 된다. 예측 불가한 자연에 상상력과 기술로 도전하는, 골프의 본질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라 할까. (이런 홀은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할 수밖에···)

포스코 인수 이후

잭니클라우스GC는 2022년 포스코그룹(포스코와이드)에 인수됐다. 대기업 소유 최고급 회원제 비즈니스 골프장으로서의 ‘폐쇄성’을 강화하거나, 송도 국제도시 국제업무지구 커뮤니티 클럽 시설로서의 세계 일류 지향 골프장이라는 본디 목적을 재정립하는 등의 투자가 선행될 듯하다.

무엇보다도, 잭 니클라우스를 통해 이루려던 ‘세계적 토너먼트 코스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세우려는 노력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될 터이다.

포스코가 인수하고 운영진을 재편하면서, 수년간 정체 중이던 골프장 정비 투자를 재개했다. 전문 인력을 보완하고 시설·장비를 확충해 코스 관리 역량을 키우고 있다.

포스코그룹이 보유한 친환경 ‘BWRO공법’으로 송도 신도시의 하수를 정화해 관개용수로 사용하는 등, 기술 혁신 경영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골프장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 159개 잭 니클라우스 설계 코스와 회원간 교류 이용을 협약하고, PGA투어의 TPC(Tournament Player’s Course)에 가입하는 등 국제적 협력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신계, 영웅계, 인간계

최근 이십여 년 사이에, 프로골프 선수들의 샷 구사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신(神) - 영웅(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 - 인간’의 단계처럼, 정상급 프로 골퍼들과 일반인들의 힘과 기량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스포츠(특히 골프)에서는 ‘신계’와 ‘인간계’라는 표현이 점점 더 현실의 구분이 되어간다.

잭 니클라우스GC를 여러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골프코스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태생부터 골프의 ‘신계’를 구현한 토너먼트 코스라는 점이다.

신화에 빗대자면, 설계자는 ‘신격의 프로’들이 겨루고, ‘신격을 꿈꾸는 영웅’들이 도전하며, 신화를 동경하는 인간들이 경험해 볼 수 있는 ‘궁극의 토너먼트 코스’를 만들고자 했다.

잭 니클라우스는 오늘날 골프 신화 세계의 아버지 격이고, 카이사르처럼 후대에 신격으로 떠받들릴 만한 ‘골프 황제’이지 않은가. 이 골프장의 마운드 하나 벙커의 섬세한 디테일에도 황제 만년의 ‘스피릿’이 살아있다.

“골프 황제 필생의 신화를 담은 토너먼트 코스”로 자임하여, 그 특성을 정교하게 되살리고 전승해 나갈 수도 있겠다.

 

 

류석무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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