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드팰리스GC ‘터에 깃든 혼’이 부르는 골프의 영감(靈感)
제이드팰리스GC ‘터에 깃든 혼’이 부르는 골프의 영감(靈感)
  • 골프산업신문
  • 승인 2023.06.1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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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무 작가의 대한민국 명작 골프장 해석 (6)
제이드팰리스 골프클럽은 북한강의 장려한 흐름 너머의 첩첩 산너울과 가까운 봉우리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오는 듯한 기운이 골프장 터 전체에 넘나들고 있다.
제이드팰리스 골프클럽은 북한강의 장려한 흐름 너머의 첩첩 산너울과 가까운 봉우리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오는 듯한 기운이 골프장 터 전체에 넘나들고 있다.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작가의 글을 연재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골프장들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발굴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한국 명작 골프장 해석’은 ‘이야기’보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간 ‘해석’을 통해 새로운 문화 지평을 발견하는 ‘대안 비평’입니다. 한국 최고의 골프장 스무 곳을 차례로 톺아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제이드팰리스 골프클럽은 한국 골퍼들에게 몇 가지 특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 호주 출신 세계 골프 레전드, 그렉 노먼의 설계 코스.
- 한화그룹의 폐쇄적 회원제 비즈니스 골프클럽.
- KLPGA투어 메이저 대회 ‘한화클래식’ 개최 코스.

코스 설계의 귀족적 태생 유전자와 함께 최고급 클럽으로서의 희소성, 메이저 골프대회를 치르는 명문(名門)의 요건 등을 고루 갖춘 골프장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들이 빚는 세속의 선입견을 벗겨내고 볼수록, 고유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많이 품은 곳임을 알게 된다.

그렉노먼이 세계 골프 최강자 시절 설계한 코스

그렉 노먼(Gregory John Norman, 1955~ )은 선수 시절 331주 동안 세계랭킹 1위를 지킬 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룬 프로골퍼였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 나중에 그의 상품 브랜드가 된 - ‘Attack Life’였다. ‘닥치고 공격’이라고 할까. 그는 높은 탄도로 멀리 날려 보내는 샷과 상상력 넘치는 도전적 플레이로 인기 높았다.

1986년에만 세계 투어에서 무려 11승을 거두기도 했다. 과감한 공격 성향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그 스타일에 스스로 발목 잡히기도 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로 앞서다가 파이널 라운드에서 미스샷을 거듭하며 무너져, ‘메이저 8번 준우승’이라는 아쉬운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디오픈에서 2번 우승했으며 전 세계 프로골프투어에서 88번 우승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제이드팰리스 코스를 설계할 때는, 그가 세계 골프 최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선수로서뿐 아니라 사업가로서 성공시대를 연 그는, 1987년에 설계회사 GNGCD(Greg Norman Golf Course Design)를 설립하여 세계 곳곳에 100여 개의 골프코스를 설계했다.

제이드팰리스 초기 설계 실무는 시드니 출신의 GNGCD 소속 골프코스 설계가 밥 해리슨(Bob Harrison)이 맡았으며 한국 측 실시설계 파트너는 ‘임골프 디자인(담당 코디네이터 권동영)’이었다. IMF이후 재개된 작업에서는 GNGCD에 새로 합류한 - 나중에 호주골프코스설계가협회장을 지낸 – 할리 크루즈(Harley Kruse)가 실무를 이어받아 마무리했다.

그렉노먼의 ‘샌드 페이스드 벙커’

(골프코스를 이해하고 플레이하려는) 한국 골퍼들 사이에서, 제이드팰리스의 ‘샌드 페이스드 벙커(Sand faced bunker)는 유명하다. 이름대로 모래 면이 플레이어와 얼굴을 마주 보는 듯한 모양의 벙커다.

이 벙커들은 타깃을 공격하려는 플레이어에게 위협적 존재감을 과시하며 도전해오는 한편, 조형의 비현실적 아름다움으로 강렬한 시각 경험의 기억을 새겨주기도 한다.

그린 주변 벙커뿐 아니라 페어웨이 벙커에도 적용된 이 형태는, 빠져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장해물로서 골퍼의 성취감과 절망감을 교차시키는 가운데, 게임의 재미를 극적으로 고양한다.

그렉 노먼의 설계 철학은, 자연을 해치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땅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코스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노먼은 ‘least disturbance’라고 표현). 그는 세계 여러 나라에 걸친 작품들에서, 각 지역 자연 특성에 맞는 질감과 모양의 장해물과 벙커를 적용해왔다. 그런데 제이드팰리스에서는 호주 샌드벨트 지역 레전드 골프장의 벙커 형태를 그대로 원용했다.

한국 산야에 적용한 호주 레전드 코스 스타일

호주 골퍼들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골프코스 역사의 본류가 호주 대륙으로도 이어졌다고 자부한다. 영국에서 건너온 이들이 세운 나라로 오랫동안 영연방에 속해왔던 역사·문화적 바탕이 있으며, 스코틀랜드 출신의 전설적 골프코스 설계가 알리스터 맥킨지 박사(dr. Alister MacKenzie, 1870~1934)의 지휘로 조성된 로열 멜버른 골프클럽 등을 통해 골프코스의 원형과 본질을 계승하고 있다고 여긴다.

설계자 그렉 노먼은 멜버른의 전설적 골프코스들에서 영감을 받아 이 스타일을 적용한 듯하다. 마치 땅이 허물어져 표면 밑 모래가 비탈져 드러난 듯한 모습의 벙커들을 한국 산중으로 가져온 것이다. 벙커 가장자리에는 진흙으로 수직 턱을 쌓아 선형이 유지되도록 한 모양이었다.

호주에서 골프코스 디자인을 전공하고 실무를 익힌 골프코스 설계가 하종두 씨는 “호주 골프인들은 자기 나라 골프의 정통성과 고유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렉 노먼은 호주 골퍼들에게 잭 니클라우스나 타이거 우즈 이상의 영웅이다. 설계가로서도 그의 권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이드팰리스의 벙커 스타일은 샌드벨트 지역의 로열 멜버른이나 킹스턴 히스 등의 골프코스들을 오마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유일한 그렉 노먼의 작품에서 호주 골프코스의 정수를 선보이려 했던 듯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자연환경에 적합한가’하는 이견

이 벙커 스타일을 비판하는 골프 전문인들도 있다. 한국 기후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호주 멜버른 샌드벨트 지역에서는 건조한 기후의 모래땅에 골프장을 들였기에 자연스럽게 이런 벙커가 조성된 것이었지만, 장마철에 폭우가 집중되는 우리나라 기후 환경에서 형태를 지속 유지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라는 비판이 일부 골프코스 전문인들 사이에서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장맛비에 벙커 가장자리 선형과 사면이 손상되는 경우가 잦아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벙커 턱을 보존하기 위해 고무 재질의 턱을 두르고, 공이 벙커 비탈면에 놓였을 때 예외적 ‘로컬 룰’을 적용했던 적도 있었다.

이들 벙커가 너무 어렵다는 회원들의 원성도 높았기에, 그렉 노먼에게 벙커 수정에 대한 의견을 구했더니 “벙커를 고치려면 내 이름은 떼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비판을 극복하는 기술의 진보

제이드팰리스의 샌드 페이스드 벙커에 대한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넓고 길게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제이드팰리스는 이십여 년 동안 이 벙커 스타일을 지켜왔다. 그동안에 적지 않은 국내 골프코스들에 - 이곳과 똑같은 형태는 아니더라도 - 샌드 페이스드 벙커가 도입되었다. 플레이어의 시야에 벙커 면을 뚜렷이 드러냄으로써 도전적 전략성을 높이는 기법이 한국 골프장들에 시나브로 적용되어 일반화된 것이다.

제이드팰리스 또한 관리 기술의 경험적 개선과 발전을 꾀하는 가운데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다. 최근에는 일부 벙커 턱에 ‘듀라벙커(durabunker)’ 스타일을 도입함으로써, 그렉 노먼의 설계 의도를 존중하는 한편 형태 유지의 어려움도 해결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듀라벙커’는 상표명인데 관련 업계에서 그와 유사한 기법까지 통칭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상세 설명은 생략한다).

어쨌든 그런 가운데 한국 골퍼들은 - 마치 얼굴을 마주 보고 도발하는 생명체 같은 – 샌드 페이스드 벙커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었고, 점점 더 많은 골프장에서 향유하게 되었다.

(한화그룹이 뒷받침하는 최고급 클럽이기에 이 벙커 형태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내장객을 유치하는 한국의 대중적 골프장들에 두루 적용되기는 어려운 스타일이다. 초창기 링크스의 벙커는 자연적으로 발생했지만 이내 인공적으로 보완되었으며, 이후 세계로 퍼지면서 각 지역의 자연환경 및 공사 장비와 예산, 인간의 상상력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변모해왔다. 골프코스에 설치되는 장해물들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벙커는 그 시대의 골프 세계관과 - 기술과 자본이 결합한 – 예술적 창조성이 가장 민감하게 발휘되는 대상이다.)

벙커 스타일과 한국 산중 자연의 조화

벙커는 예술성이 총체적으로 발현되는 부분이다. 크리크나 호수, 수목 등 다른 장해물과 조경 요소들에도 예술적 완성이 필요하지만, 훌륭한 코스의 잘 만든 벙커는 거의 모든 홀에서 플레이어와 감응하며 유기적으로 작용하기에, 연결된 생명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형태의 아름다움이나 기능적 역할을 넘어, 플레이 속에 창조적 경험과 영감을 불어넣는다.

숲이 우거지고 계곡과 구릉이 넘실대는 한국의 바위산 골프코스에, 멜버른 모래 평원의 벙커 스타일이 과연 어울리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코스 설계가 하종두 씨는 “제이드팰리스는 그렉 노먼의 코스다운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벙커의 모양은 구릉 지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이후 한국 코스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제주 핀크스 리노베이션 작업에서 로빈 넬슨과 협업했는데 제이드팰리스 벙커가 한국에 없었더라면 새로운 벙커 스타일 도입을 설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휘슬링락의 샌드 페이스드 벙커도 제이드팰리스의 선례가 있었기에 적용하기 수월했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강과 산너울, 봉우리들과 코스의 감응

제이드팰리스의 벙커들은 코스를 감싸고 도는 산너울과 봉우리들에 조응한다. 이 터는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강이 크게 돌아나가며 형성된 구릉지다. 페어웨이는 해발 고도 평균 200미터 정도를 오르내린다. 등성이와 골짜기를 따라 조성했으면서도 고저 차가 심하지 않다.

백두대간으로 보면 한북정맥에서 갈라진 ‘화악지맥’이 뻗어 내려오다 북한강의 유장한 물돌이를 만나 보납산, 물안산, 월두봉의 봉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기세를 받아들이는 자리다. 이 봉우리들은 강 건너에서 골프장 터를 마주 보며 수만 년 이상 감응해 온다. 특히 강 건너 우뚝 솟은 월두봉은 처음 마주하는 이에게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높이는 해발 453미터 남짓하지만 때로는 코스를 굽어보는 듯 높고 우뚝하여 신령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 코스에서 라운드하다 보면 이 월두봉과 여러 차례 인사하게 된다. 예민한 골퍼는 이 코스의 절반 정도 홀들이 이 봉우리의 ‘영향권’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9번 홀 옆에 만들어 놓은 커다란 인공폭포는, 아마도 이 월두봉의 강한 기운(陽氣)을 받아내기 위한 음기(陰氣) 보완의 비보(裨補,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을 뜻하는 풍수 용어)일 것이다. 이 봉우리와 겹겹의 산너울이 이 코스 안의 크고 강렬한 모양의 벙커들과 조응하면서, 서로의 기운을 어루만지고 있다. 보기 드물게 기묘한 조화다.

‘장소에 깃든 혼(Genius Loci)’

15번 홀 티잉 구역 옆의 바위 비문을 보면, 그 기묘한 느낌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다. 풍수를 연구한 지리학자 최창조 선생이 쓴 글을 박아놓은 ‘위지령비’다. 골퍼들에게 워낙 유명하고 졸저 [한국의골프장이야기]에도 담은 내용이지만, 땅의 영을 부르고 마음을 서늘케 하는 글이기에 새삼 적어둔다.

이 터에 위로와 감사를 드리며

삼가 아뢰옵건대 우리 인간들의 이기(利己)와 방종(放縱)을 용서하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은 이곳에 쉼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일들이 지령(地靈)의 심기(心機)를 괴롭히는 짓인 줄 모르는 바 아니오나 세상살이의 고단과 슬픔이 너무 과하여 이 터의 지령에게 심려(心慮)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저희는 이 터의 지령과 수목, 돌, 흙, 풀벌레 하나하나에까지 정성을 바칠 것을 천지신령에 두고 약속 드립니다. 저희들은 결코 지령께 누가 되지 않도록 깊이 삼가하며 감사의 심회를 잊지 않겠습니다. 훼손된 부분은 치유해 드리고 불편한 심경은 다독여 드릴 것입니다. 지령이시여! 이곳에 품을 들인 저희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모쪼록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골프코스 해석에 풍수(風水)를 끌어들임을 경계한다.

다만, 인간의 허황한 발복 기원을 위한 술법적 풍수가 아니라, 한국의 자연을 이해하고 코스의 생명체적 유기성을 느끼는 인문의 관점에서, 풍수의 해석을 보완적으로 참조하고 있다.

위지령비의 글을 읽지 않더라도, 이 터에서 무엇인가 독특한 영감을 느끼는 이가 많은 듯하다. 알고 지내는 골프코스 설계가 한 분은 이 코스 터에 대하여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라틴어 ‘게니우스 로키’, 신화에서 ‘터를 지키는 신령’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장소가 품은 독특한 분위기, ‘터에 깃든 혼(spirit of the place)’이라는 말이다.

 

제이드팰리스에서는 자연 지형과 풍광을 주유하듯 다양하게 만난다. 샷 할 때마다 벙커와 골짜기 등 장해요소들을 어떻게 극복할지 생각하는 가운데서도, 자연을 탐험하는 묘미를 즐기게 된다.
제이드팰리스에서는 자연 지형과 풍광을 주유하듯 다양하게 만난다. 샷 할 때마다 벙커와 골짜기 등 장해요소들을 어떻게 극복할지 생각하는 가운데서도, 자연을 탐험하는 묘미를 즐기게 된다.

코스 아름다움의 가장 높은 기준 - '경외감'

혼이 깃든 장소에 ‘영감을 주는 코스’를 만들고픈 것은 세상 모든 골프코스 전문인들의 꿈이다.

골프장을 소유 운영하는 이들도 다르지 않다. ‘선택받은 소수’의 회원들로 꾸리고자 하는 클럽일수록 ‘사회의 리더들이 라운드하며 휴식과 영감을 얻는’ 코스를 원하거나, 그런 골프장으로 인식되고파 한다.

특히 극소수 골프클럽들은 ‘폐쇄적인’, ‘극소수 회원제’, ‘최고급 명품’, ‘극진한 서비스’ 등으로 차별적인 ‘아우라’를 연출하는 데 공들이곤 한다. 그러나 귀족 분위기의 명품 이미지나 고급 서비스는 돈과 시간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언정, ‘터에 깃든 혼’과 ‘영감을 주는 자리’는 하늘이 내릴 뿐이다.

<골프코스 설계 및 시공, Golf Course Architecture – Design, Construction, Restoration> 책의 저자이자 골프코스 설계가인 마이클 허잔(Dr. Michael J. Hurdzan) 박사는, 골프코스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최고 기준을 ‘경외감(Awe)을 불러일으키는 코스’라고 적었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골프장 조성자의 독창적인 지성과 기술, 충분한 예산이 필요하되, 무엇보다 땅의 본질적 특성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골프장과 영감을 주는 코스는 다르다. 아티스트의 재능과 인공적 기술로 일부 장소에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끌어낼 수는 있지만, 수만 년 이상 하늘과 땅의 감응 속에서 ‘장소에 깃든 혼’은 인간이 만질 수 있는 차원 너머에 있다.

생동하는 자연의 기세와 코스의 조응

이 자리에 깃든 자연의 영감을 그렉 노먼이 온전히 불러내 코스에 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터에 깃든 혼’이 불러일으키는 경외감을 얼마나 어떻게 이 코스 어느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지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다.

바닷가 절벽 위 코스에 견줄만한 감동을 산중 골프장에서는 못 느끼는 이도 있으리라. 정원처럼 잘 정돈된 코스의 비단결 같은 잔디와 수려한 정원수들이 이루는 조경에 더 감탄하는 이도 없지 않겠다.

하지만 어쨌든, 한국의 산중 골프코스 중에서 - 상위 랭킹 코스 또는 ‘최고급’을 다투는 클럽들 가운데서도 - ‘지니어스 로사이’랄 만한 장소의 경외감을 이처럼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곳을 찾기는 어렵다.

북한강의 장려한 흐름 너머의 첩첩 산너울과 가까운 봉우리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오는 듯한 기운이 골프장 터 전체에 넘나들고 있다. 코스에 들어서면, 크고 깊은 벙커들은 이 터를 지키는 정령들처럼 비장해 보이기도 한다. 호주 멜버른의 골프코스들에서 샌드벨트 땅속에서 불려 나와 ‘장소의 영혼’ 몫을 하던 모래 벙커들이, 이 터에서 백두대간의 생동하는 기세와 조응하고 있다.

 

넬리 코다 파5 9번홀 알바트로스 기념(왼쪽), 타이거 우즈 280미터 티샷존 표석(오른쪽).
넬리 코다 파5 9번홀 알바트로스 기념(왼쪽), 타이거 우즈 280미터 티샷존 표석(오른쪽).

서로 닮아가려는 한국 골프장들과 다른 고유성

골프는 본디 자연을 생명체로 인식하여 맞싸우고 교감하는 행위에서 발전해왔으나, 한국의 골프장들이 한반도 땅의 고유한 생명감을 발견하고 살려내려는 본질적 노력은 보기 드물거나 매우 부족했다.

국내 ‘골프코스 랭킹’ 등 평가에서 인공적 완성도를 높이 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재벌 가문의 극소수 골프클럽들이 한국 골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분위기 속에서, 그 폐쇄·희소성과 명품 이미지 후광에 사로잡힌 선입견이 골퍼들에게(심지어 골프코스 평가 전문 패널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권위 있는 기관’이 선정하는) 세계 골프코스 랭킹에서, 최고급을 내세우는 명품 지향 클럽들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부르는 골프코스를 뛰어넘어 최상위에 앉는 결과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굳이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골프장들은 안양CC로 대표되는 ‘삼성 스타일’의 일부 특징을 닮아 왔고 닮아간다. ‘러스틱 코스’를 표방하며 문 연 곳이 몇 년 지나면 알록달록한 화목 조경을 들이고 ‘매니큐어드 코스’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삼성 가문 대기업 코스들이 한국 골프장 문화 발전을 이끌어 왔으며, ‘안양 출신’ 골프장 전문인들이 모범을 보이며 큰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그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은 칭송받을 만하다. 하지만 좋은 골프코스는 하나하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한국 골프장들이 서로 닮아가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저마다 고유한 개성과 본질 가치를 발견·고양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자연이라는 최강자와 대결하는 자존감

제이드팰리스를 만들 때, 한화그룹 최고경영자가 그렉 노먼에게 “가장 어려운 코스로 설계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하지만 설계자는 당시의 한국 명문 골프장들보다 높은 난도로 조성하되, 비즈니스 코스로서의 역할도 고려한 듯하다. 당시 세계 프로골프투어 최강자이던 그에게, 어려운 코스 만들기는 익숙한 일이었으리라. 다만 한국 대기업그룹의 비즈니스용 회원제 클럽으로서의 주된 용도에도 적합하도록 균형감을 주어야 했을 것이다.

이 골프코스에서 플레이하다 보면, 이 일대의 자연 지형과 풍광을 주유하듯 다양하게 만난다. 샷 할 때마다 벙커와 골짜기 등 장해요소들을 어떻게 극복할지 생각하는 가운데서도, 자연을 탐험하는 묘미를 즐기게 된다.

깊은 벙커에 빠져 위기를 맞더라도 자연이라는 최강자와 대결하는 자존감을 느낀다고 할까. 각 홀마다 독립된 다른 분위기의 환경에서 다른 상대에 도전하는 모험이 펼쳐진다.

짧은 홀의 극적 반전, 긴 홀의 장엄한 교감

그 모험이 극적인 다양성으로 흥미진진하다. 짧은 홀들에는 극적 반전의 재미가 있고 긴 홀에서는 자연과 장엄하게 맞서며 교감하는 기분을 살렸다.

1번 파4 홀은, 장타자라면 원온(On in one)에 도전하고픈 ‘드라이버블 홀’이다. 그린 앞에 대형 클러스터 벙커를 설치해 공격과 방어의 극적 모티브를 주었다. 이글도 더블보기도 나올 수 있다. 첫 홀을 편안하게 초대하는 듯하면서도 익사이팅 게임으로 빠져들게 한다.

12번 파4 홀은 누구나 버디에 도전할 수 있을 듯 짧지만, 깊고 큰 벙커와 역동적 그린 콤플렉스가 티샷과 어프로치샷 낙하지점을 고민하게 만들면서, 플레이어와 다양하게 반응한다.

14번 짧은 파3 홀은 벙커 위에 떠 있는 인피니트 그린을 향해 티샷한다.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자리에서 높은 탄도로 띄워야 하기에 핀 위치에 따라 샷밸류가 달라진다.

산등성이를 타고 머나먼 첩첩의 산너울을 보며 달리는 듯한 5번 파4 홀과 13번 파5 홀도 게임의 모험적 재미를 더한다.

전후반 마지막 홀인 9번 파5 홀과 18번 파4 홀에서는, 고풍스러운 클럽하우스를 향해 돌아오면서 버디 또는 이글로 승부가 뒤집힐 수 있는 묘미를 주었다(한화클래식 대회에서는 인·아웃 순서를 바꾸어 9번 파5 홀로 마치게 된다).

 

프로골프 메이저 대회를 치르는 코스

2017년부터 이 코스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한화클래식’이 열리고 있다. 대회 셋업을 보면, 전장은 매년 6700~6800야드(2022년 6777야드, 파72)로 설정되며 페어웨이 폭을 바이올린 허리처럼 좁힌다. 러프는 7cm~10cm 정도로 길러 공을 빠트리면 반드시 불이익을 받게 만든다. 그린도 빠르고 딱딱하게 준비한다.

대회가 열리기 전 십수 년 동안 매우 어려운 코스라고 평가받아왔는데, 세계 정상급 프로골프 선수들이 매년 대회를 치르다 보니 코스의 공략법을 점점 터득해오는 듯하다.

선수 비거리와 샷 구사 능력이 해마다 향상되면서 벙커 등 장해물에 대한 공포감도 다소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회 주최 측이 해마다 셋업 난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근엔 페어웨이 폭을 15~20m 정도까지 줄이기도 한다).

총 전장이 7072야드로, 토너먼트(남자 프로골프대회) 코스로는 길이가 짧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남자 선수들에게 오히려 어렵게 셋업할 수 있는 바탕은 충분하다.

남자 프로골프 국제 대회를 여는 코스 가운데는 전장이 7000야드 미만인 곳들이 적지 않으며, 세계 랭킹 최상위 골프코스 가운데 길이가 6000야드 중반대인 곳들이 많다.

(그렉 노먼이 이 코스에서 오마쥬한 로열 멜버른 골프클럽 웨스트코스도 마찬가지로 짧은데, 프레지던츠컵 등 세계 일류 국제 대회를 열어오고 있다. 파70 이하로 설정을 변경하며, 무엇보다도 휘어진 블라인드 구조의 홀들, 벙커와 러프 등 장해 요소의 중첩 등이 길이를 무의미하게 한다. 바로 옆 이스트코스의 홀들과 조합하여 대회 코스를 특별 설정하기도 하며, 페어웨이 잔디 품종을 골프 공의 ‘런’이 적게 발생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코스 일부 개선을 검토한다는 이야기에 대하여

제이드팰리스가 문을 연 지 이십 년쯤 되면서, 코스의 일부 개선을 검토한다는 말이 들린다.

세계적 명문 코스들도 세월이 흐르면 코스를 개선한다. 코스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시대에 맞게 되살려야 하며, 명작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골프 대회를 치르다 보면 개선해야 할 사항들이 거듭 나타나기 마련이다. 세계 최상급으로 꼽히는 코스들은 거의 모두 이런 과정들을 거쳐왔다.

선수(플레이어)들 드라이버 비거리가 매년 늘어나고 샷 기량이 정교해지면서, 우선 벙커와 티잉구역 등을 보완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드러나고 있다. 벙커 등 장해물들을 보충 보완 또는 위치 수정한다면, 대회 셋업에서 페어웨이를 지나치게 좁히거나 러프를 너무 억세게 기를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벙커와 마운드의 선형, 러프 지역의 질감 등 디테일을 섬세하게 되살릴 지엽적 필요성도 있겠다. 물론 그런 게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일반 골퍼들이 게임하는 코스로는 난도가 매우 높은 편이지만, 프로선수들이 한국 최고의 상금을 걸고 겨루는 메이저 토너먼트 코스인 것을 감안하면, 더블보기나 트리플보기가 나오기 쉬울 만큼 전략적 도전성이 두드러진 홀이 후반(백 나인)에 하나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 혼자 느낌이겠으나, 월두봉을 거침없이 정면으로 마주 보며 대결하는 듯한 홀이 하나 정도 있다면 이곳 ‘장소에 깃든 혼’을 제대로 느끼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한다. 골퍼가 자기 내면의 초자연적 힘을 일깨워 맞서게 되는 홀 말이다.
 

제이드팰리스가 리노베이션을 검토하면서, 클럽에 대한 평판의 격상을 새삼 도모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최고급 명품성’을 내세우는 극소수의 ‘폐쇄적 클럽’을 참고한다는 풍문도 있다.

아무쪼록 고유한 장점을 오롯이 재발견하여 고양해가기를 기대한다. 이 골프장은 대기업 그룹의 최고급 회원제 클럽으로서 높게 평가되어왔지만, 골프코스의 본질적 가치와 매력은 오히려 온전히 조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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