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조의 골프룰 더하기 인문학 18] 한국오픈 코스셋업, 꼭 그렇게 어려워야만 할까?
[정경조의 골프룰 더하기 인문학 18] 한국오픈 코스셋업, 꼭 그렇게 어려워야만 할까?
  • 골프산업신문
  • 승인 2023.07.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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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이란 말이 대한민국 여름을 더욱 짜증스럽게 달구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변별력을 위해 출제되는 초고난도 문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문항을 푸느냐 못 푸느냐에 의해 영향을 받는 수험생은 1% 미만이다.

2023 한국오픈이 끝난 후 골프계에도 킬러 문항처럼 어려운 코스 셋업(Course Setup)으로 논란이 일었다. 내셔널 타이틀에 어울리는 난이도였다는 긍정 평가와 작위적으로 어렵게만 설정한 코스가 남자골프 인기를 떨어뜨린다는 부정 평가도 있었다.

구기종목 중 플레이 장소의 난도를 높여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골프밖에 없다. 축구장을 늘리거나 농구 골대를 높이거나 테니스 코트 바닥에 언듈레이션을 주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코스 셋업으로 유명한 2023 US오픈은 전장 7423야드(파70)이며 우승 스코어는 10언더파였다. Top20 중 4R 내내 오버파를 치지 않은 선수는 단 3명뿐 이었다.

올 한국오픈은 7326야드(파71)로, 우승 스코어는 6언더파이고 2위는 이븐파였다. 모든 라운드를 언더파로 끝낸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한국과 미국의 내셔널 타이틀 스코어를 단순 비교하면 한국오픈이 훨씬 더 어렵고 까다롭게 셋업된 코스였다.

US오픈 20위가 1오버파인데 반해 한국오픈 20위는 6오버파였다. 물론 코스도 다르고 출전선수 세계랭킹을 고려하지 않은 비교임을 감안하더라도 역설적으로 세계 랭킹을 따져 코스 난이도 셋업을 평가하면 더 큰 모순이 된다.

US오픈에는 세계 랭킹 1, 2, 3위가 모두 출전했지만, 한국오픈 우승자 한승수의 세계 랭킹은 185계단 뛰었는데도 449위 수준이다.

US오픈을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왜 어려운 코스 셋업을 고집하는 걸까?

첫째, 세계 최고 선수들에게 한계에 이르는 가장 도전적 골프 기술 테스트 기회를 제공해 그 대회 권위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한 도전은 골퍼뿐만 아니라 클럽과 볼을 포함한 골프 산업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둘째, 전문 골퍼가 한 홀을 마치는데 필요한 스트로크 수를 의미하는 ‘파(Par)’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다. 기준 타수를 의미하던 영국의 ‘보기(Bogey)’가 미국의 ‘파’에 밀려 1오버파로 변화된 역사를 지키려다 보니 각 홀 목표가 ‘파 세이브(Par Save)’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골프협회(KGA)가 한국오픈 코스 셋업을 어렵게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2002년 한양CC에서 열린 한국오픈에서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4R 합계 23언더파를 치며 KPGA투어 72홀 최소타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를 지켜본 코오롱 그룹 고 이동찬 회장이 대회 장소를 우정힐스로 옮겨 한국골프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코스 셋업을 주문했고, 실제로 그 다음 해인 2003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존 댈리 우승 스코어는 6언더파였다.

그런데 코스셋업 이 외의 한국과 미국, 유럽 골프계의 차이를 너무 간과하고 있다. US오픈 과 디오픈 우승상금은 각각 47억원, 33억원인데 한국오픈 우승상금은 5억 원에 불과하다.

깊은 러프, 좁은 페어웨이, 빠른 그린과 어려운 핀 위치로 셋업한 대회에서 우승하면 디오픈이나 US오픈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코스 셋업을 어렵고 까다롭게만 하는 것은 여자골프에 비해 관심을 못 받는 한국 남자프로골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전선수 144명 중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가 단 1명인 대회에 어떤 재미가 있을까?

축구는 골, 농구는 덩크 슛, 야구는 홈런이 나와야 팬들이 열광하듯 골프는 버디가 나와야 침묵의 갤러리들이 환호할 수 있고, 그 환호가 인기로 연결되고, 그 인기가 더 많은 스폰서를 유혹해 더 많은 대회가 생길 수 있다.

KLPGA투어 여자골퍼들이 세계 1위를 하는 것은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 그들의 실력 때문이고, 그 경지에 오를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게 한 것은 뜨거운 대중의 관심이었다.

킬러 문항으로만 가득 채운 시험은 난도만 높을 뿐, 공정성도 변별력도 없다. 어렵게 셋업된 코스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대중들이 환호할 수 있는 대회가 필요하다.

그렇게 인기를 얻고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여서, 우승상금 47억 원 대회가 있다면, 어느 프로 골퍼가 생계비를 벌기 위해 레슨을 하거나 택배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쓰겠는가?

한국오픈 우승자 세계 랭킹이 449위가 아니라 400위 안에 든 선수만으로 한국오픈을 치를 수 있을 때 킬러 코스 셋업을 해도 늦지 않다. 길은 사람이 많이 다녀야 생기고, 역사는 사람이 모여야 이루어진다.

 

정경조 한국골프대학교 교수, 영문학 박사, KGA 홍보운영위원
정경조 한국골프대학교 교수, 영문학 박사, KGA 홍보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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