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두 칼럼] 언젠가 이뤄보고 싶은 낭만 설계가의 소박한 꿈
[하종두 칼럼] 언젠가 이뤄보고 싶은 낭만 설계가의 소박한 꿈
  • 골프산업신문
  • 승인 2023.08.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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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골프코스 설계가 알리스트 멕켄지가 말하는 벙커는 단순하다. 볼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벙커는 골프 플레이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하며 볼 위치에 따라 플레이 공략을 달리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더불어 코스 설계가의 벙커는 심미적이면서 전략적이어야 한다. 때로는 자연이 주는 환경에 따라 그 벙커의 모습(디자인)이 다양해질지언정 그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대표적 코스는 싸이프러스포인트, 오거스타내셔널, 로얄멜번이다. 이들 코스의 처음 오픈 했을 당시 사진을 보면 최초의 벙커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최근 해당 코스들의 벙커 모습을 보면 신기할 정도로 차별화되어 있다.

자유 곡선을 이용하면서 듄즈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싸이프러스포인트, 칼처럼 경계가 뚜렷하면서 주변 인공적 조경으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오거스타내셔널이 그렇다. 호주에 있는 로얄멜번 코스는 현지 환경을 그대로 살려 플레이지역보다 훅 파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벙커는 호주 골프코스 전형이다.

시간이 지나 이들 벙커는 환경에 따라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린을 노리거나 페어웨이를 공략하는 지점에는 항상 벙커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멕켄지가 설계한 코스에서는 수많은 대회가 개최된다. 매년 마스터즈가 개최되는 오거스타내셔널이나 프레지던츠 컵 단골 코스인 로얄멜번이 그렇다.

싸이프러스포인트 경우는 US오픈을 유치 하려했으나, 당시 흑인 골퍼인 타이거 우즈가 참가한다는 이유로 코스를 개방하지 않아 대회를 열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후에도 유명 대회를 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미국골프산업이 상당히 보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유명 골프클럽들이 여성골퍼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미국골프설계자협회 회원중 여성회원은 있어도 아직 흑인 회원이 없는 이유를 보더라도 그 보수성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2021년 라이더컵을 개최한 휘슬리스트레이트 코스는 미국 내륙에 있지만, 미시건 호수를 끼고 있어 마치 그 옛날 영국의 링크스 코스를 연상케 한다.

1998년 개장후 3번의 PGA 챔피언십를 비롯한 수많은 메이저 대회를 개최한 최고의 리조트 코스다. 피트 다이와 그의 부인 앨리스 다이가 공동 설계했다. 이 코스에서 대회를 개최할 당시 한국의 유명 여성 프로 골퍼 A씨가 피트다이와 함께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피트 다이는 대회 내내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A프로는 설계자에게 왜 그렇게 웃는지 질문했다.

그러자 설계자는 의외의 대답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함정(벙커)에 선수들의 볼이 빠지는 것을 보니 너무도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벙커 탈출에 힘들어 하는 선수와는 반대로 그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마치 덧에 걸린 먹잇감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사냥꾼의 마음일 수 있겠다.

또 다른 전설적 설계자 탐 파지오는 여성 티 앞에는 워터해저드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내가 연못의 물을 넘기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 하기 때문이란다.

워터 헤저드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그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여성티 앞 연못을 설계하지 않는 것은 설계자 탐 파지오만의 아내사랑(?)이자 낭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넘겨 치는 해저드는 60미터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필자의 스승 로빈 넬슨은 말했다. 젊은 여성 골퍼라면 쉽게 넘길 수 있지만, 시니어가 되거나 비기너 여성에게는 매우 부담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골프코스 설계를 업으로 하는 필자도 이러한 낭만을 가지면 어떨까 고민한 경험이 있다. 공략 방향을 위한 포인트가 필요할 때, 벙커 뒤 단풍 나무를 모아 심어 방향을 제시하거나, 아일랜드 그린에 특정 모양을 적용하는 낭만적 구상을 해 본적도 있다.

경험이 적은 설계자가 아직 이러한 낭만적 설계를 적용하기에는 다소 조심스럽다. 하지만 언젠가 나이가 지긋해지고 필자를 대표하는 코스를 설계할 기회가 온다면 슬그머니 ‘서쪽 담 넘어가는 구렁이’처럼 나만의 낭만적 코스가 만들어지길 꿈꿔본다.

 

하종두 JDGA 대표
하종두 JDG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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