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케이프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
사우스케이프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
  • 골프산업신문
  • 승인 2023.08.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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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무 작가의 대한민국 명작 골프장 해석 (7)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16번홀(파3).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16번홀(파3).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작가의 글을 연재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골프장들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발굴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한국 명작 골프장 해석’은 ‘이야기’보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간 ‘해석’을 통해 새로운 문화 지평을 발견하는 ‘대안 비평’입니다. 한국 최고의 골프장 스무 곳을 차례로 톺아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세계에 귀한 ‘버드 아이 뷰’

바닷가 골프장은 세상에 많지만 해안에 바로 붙은 코스는 흔치 않다. 바다 절벽 위에 있는 곳은 더욱 드물다. 사우스케이프처럼 굽이굽이 바다를 조망하는 언덕을 품은 곳은 손꼽을 만큼 귀하다.

해외 골프투어 중계에서 보여주는 골프코스에 밀려드는 듯한 바다는, 대개는 카메라를 높은 데 설치해서 찍은 것이다. ‘바다 반 코스 반’인 듯 보이는 세계 유명 골프장 모습들이 미디어 보도에 넘쳐나지만, 거개가 ‘드론 촬영 사진·영상’들이다. 해안 절벽 위에 있다고 해도 열에 아홉은 실제 플레이하는 터의 높낮이 차이가 크지 않은 평지여서, 골퍼의 눈앞 가득히 바다가 펼쳐지는 자리는 희귀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골프링크스 7번 파3 홀이 백 년 넘도록 세상에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도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파도 위의 그린을 향해 샷하기 때문이다.

사우스케이프 해안에는 그런 자리가 드물지 않다. 누구나 ‘새의 눈(Bird’s-eye)’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언덕이 여러 군데 있다. 파도 위에 떠 있는 그린을 향해 내려치고, 바다로 빠져드는 듯 뻗은 페어웨이를 내려다보며 치는 홀들이 굽이굽이 나오는 코스 터다.

세상에 다시 나오기 어려운 ‘절정 지형의 공간’

세상에는 섬에 있는 골프장도 많다. 하지만 동서남북에 두루 바다를 접한 곳은 찾기 어렵다. 만(灣,Bay)이 바다를 가두고 곶(串,Cape)이 굽이치는 지형은 드물며, 바다를 건너 치는 홀들이 나올만한 코스 자리는 지극히 희귀하다.

경상남도 남해 창선도의 사우스케이프 터는 바다 위 까마득한 바위 낭떠러지와 평화로운 백사장이 공존하는 곳이다. 켜켜이 쌓인 퇴적암 벼랑에 강인한 해송과 무른 활엽수들이 어울려 자라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바다 언덕 아래 파도가 부서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한 코스에서 일몰과 일출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이런 자리는 세상에 나오기 어렵다.

억겁 세월의 자연이 이 희귀한 지형을 만들었다. 수억 년 전 퇴적된 바위층이 수천만 년 전에 융기하여 끊임없는 비바람에 침식되고,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던 이만여 년 전에서 칠천여 년 전까지 서서히 바다에 잠기며, 리아스식 해안의 다도해 섬 언덕이 되었다.

이곳에선 땅과 바다를 나눌 수 없다. 땅끝은 바다의 시작이고 파도와 바람이 한 몸이다. 언덕에 서면 바다가 다가와 만지는 느낌에 혈관이 푸르게 물들고, 바람에 묻어온 파도가 머리를 씻고 지나간다.

드러난 뭍과 잠긴 바다가 서로의 예민한 곳을 깊이 내주며 끝없이 드나들고 있다. 여명과 노을이 영원히 교차하며 황홀함이 지속될 듯한 절정의 시공간이다.

링크스 전문가에게 다도해 언덕을 맡기다

사우스케이프 코스를 설계한 카일 필립스.
사우스케이프 코스를 설계한 카일 필립스.

이 터에 골프장을 짓는다고 했을 때, 누가 어떤 스타일로 만들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국내와 해외의 여러 코스 디자이너들이 참여하기 희망했다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Kyle Phillips Golf Course Design’이 설계를 맡았다.

카일 필립스는 캔사스 주립대학에서 조경학을 전공하고 1981년부터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의 골프코스 설계회사 등에서 일한 뒤에 1997년에 자기 회사를 차렸다. 그는 초년 설계자 시절부터 유럽 지역의 코스 설계를 많이 담당하며 링크스와 히스랜드 코스들을 연구하고 그 지형과 전략적 특성에 영향받았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 인근에 설계한 킹스반스(Kingsbarns)가 2000년 개장하자마자 세계 100대 코스 목록에 오름으로써, 그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한 2010년 아부다비에 설계한 야스 링크스(Yas Links)가 중동지역 최고의 코스에 선정되는 등 성가를 높였다.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킹스반스에서 카일 필립스는, 바닷가의 평활한 경작지를 다이내믹한 사구 지형 링크스 코스로 탈바꿈시켰다. 킹스반스 해안의 바다 쪽으로 비스듬한(해발 20미터에서 7미터까지) 지형에, 파도가 퇴적시킨 계단(테라스)형으로 홀들을 배치하여 모든 홀에서 바다가 보이도록 했다.

전통적 자연 링크스의 평면성에 입체감을 보완한 시도였다. 티잉 구역을 높게 설치하여 플레이어의 눈높이(Final Appearance)에서 홀의 전략적 형태와 장해물들이 잘 관찰되도록 배치했으며, 시선의 높이를 끌어올림으로써 코스에 바다가 성큼 다가온 듯 더 많이 보이게 했다.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피복사구와 디프레션, 개울(old burn)과 항아리 벙커들을 교묘하게 형성하여 링크스의 본질적 형태와 전략성을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특히, 바다를 건너 치는 15번 파3 시그니처 홀과 바다를 마주 보며 내리막으로 치는 8번 파3 홀, 그 주변 수려한 나무숲을 보존하여 코스에 끌어들인 극적 안배 등에서 기존의 자연 링크스와는 다른 시각적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전통적 링크스 코스들의 형태 특성과 전략성을 집약하여 구성하면서도, 현대 골프코스 설계의 관점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미국의 ‘골프다이제스트’는 이 특징들을 “미국의 코스 조성 기술과 스코틀랜드 전통의 조화”라고 했다. 킹스반스는 ‘모던 클래식 링크스’ 장르의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았으며, 카일 필립스는 그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아티스트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스코틀랜드 링크스의 본모습을 사랑하는 골퍼들 가운데는 “모던 링크스는 ‘트루 링크스’가 아니다’라고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Forged by Nature”라는 의미

사우스케이프 터의 리아스식 바다 언덕은 링크스 지대와 다른 고유성을 갖는다.

링크스는 골프가 비롯된 스코틀랜드 해안의 사구(沙丘) 지대 또는 그와 유사한 환경으로 만든 골프코스를 일컫는다.

“Forged by Nature” - ‘디오픈(The OPEN)’ 대회가 열리는 링크스에 내걸린 이 문구가 링크스의 본질을 말해준다. 거칠기로 유명한 북해(North Sea)의 풍랑이 북위 55도 일대의 해안지대에 들이치면서 쌓이고 깎이고 다져진 지형이다. 폭풍과 너울이 육지에 스며들고, 암초와 난파 등의 사연이 감도는 땅이다. 목동들은 링크스에서 양 떼를 풀어먹이다가 맑은 날이면 골프를 했고, 짐승이 파헤친 모래 벙커에서 비바람을 피했다고 한다.

‘Forged by Nature’라는 말은 지형의 특성을 뜻함과 함께, 링크스에서 골퍼가 자연에 맞서는 자세를 뜻하기도 한다.

북해의 풍랑을 그려낸 19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작품 ‘눈보라’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유럽인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 단면을 보여준다.

터너는 폭풍이 몰아치는 배 위 돛대에 스스로 몸을 결박하고 네 시간 동안 관찰하고, 증기선이 눈보라를 헤치고 출항하는 상황을 그렸다고 한다. 동양인들에게 자연이 순응과 친화, 소요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온 경향이 강하다면, 서양인들은 자연을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속 두려움의 표상인 한편 인간의 신념으로 맞서야 할 변화의 대상으로 여겨온 듯하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형태와 정신의 안팎으로 수렴한 스포츠가 (링크스에서의) 골프 아닌가 싶다.

시사이드, 링크스, 클리프탑······

링크스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간 골프코스들은 바다의 풍랑과 난파, 극복의 이야기를 육지에 재현하려 노력했다. 링크스는 자연의 단조(Forged)로 빚어졌지만, 그 밖의 골프코스들은 링크스를 닮고 넘어서려는 욕망이 가공해 왔다.

자연환경이 온화한 일부 내륙에서 공원 형태가 두드러진 모습이 되기도 했으나, 링크스 주요 요소들은 세계 어디서나 복제되고 존중되어왔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일본 등지에서 소요 정원의 세계관으로 한동안 해석되기도 했지만 지엽적 일탈이었을 뿐, 그 본질과 주된 흐름은 변하지 않거나 이내 회복되었다. 링크스가 형태적 특성을 넘어 골프코스 본질을 품은 개념으로 인식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링크스와 비슷한 코스를 만들 수 있는 곳이 해안지역이기에 바닷가에 만든 골프장들은 대개 링크스를 자처했다. 하지만 링크스가 아니라 시사이드 코스(Sea-side course)로 간주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링크스 근본주의자’들은 세상에 진짜 링크스(True Links)는 260여 개에 불과하다고 선을 긋는다.

링크스가 퍼져나가는, 또는 링크스를 뛰어넘으려는 시도 과정에서 클리프탑(Clifftop) 형태의 코스 또는 홀들이 나오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절벽 꼭대기에 조성한 것들이다. 스코틀랜드 사람 알리스터 맥킨지 박사가 백여 년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몬테레이 반도의 해안 절벽에 만든 사이프러스 포인트나, 그 인근 페블비치골프링크스가 대표적 예라 할 수 있겠다. 그 후 영국 본섬과 아일랜드, 뉴질랜드 등의 해안 절벽에 만든 코스들이 ‘세계 100대 코스’ 상위권에 올랐다. 클리프탑 코스(홀)들은 링크스의 지평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바다 절벽 자체의 강렬한 존재감으로 초월적 독립 장르인 듯 보인다.

‘링크스 스타일’ 코스는 자연 링크스의 여러 요소들을 조합하여 여느 바닷가에 비슷하게 빚어지곤 하지만, 클리프탑은 하늘이 내린 특수 지형에서만 허락된다. 한 코스에서 여러 개의 클리프탑 홀들이 나올 수 있는 터는 더욱 희귀하며, 사우스케이프처럼 바다를 건너치고, 내려보며 칠 수 있는 자리에 골프코스를 짓는 일은 억겁 속의 찰나 같은 인연으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모던 링크스의 대표적 설계가에게 건 기대

모던 링크스의 대표적 설계 아티스트가 한려수도 다도해 섬 끝 절벽 위에 골프장을 설계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의 코스가 나올지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반도 남쪽 리아스식 해안의 특이 지형과 기후 조건을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여, 링크스의 본질을 얼마나 새로운 모습으로 이곳에 살려낼지 궁금해했다.

평범한 바닷가 자리라면 수려한 휴양지 코스로 만족할 수 있겠으나, 이렇게 특별한 자리에 짓는 골프코스에 거는 기대치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드높아진다.

사우스케이프 터의 바다는 섬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기에 파도가 곱다. 유명한 클리프탑 코스들을 낳은 태평양, 대서양 같은 대양이 아닌 내륙해이며, 링크스를 빚어낸 북해의 거친 풍랑과 견줄 수 없이 바람이 온화하다.

반면에, 지형은 파도치는 듯하다. 백두대간 낙남정맥에서 뻗어 내려온 우듬지맥이 바다에 고개를 적셨다가 역동적인 산줄기로 솟구친, 산등성이와 까마득한 바위 절벽들이 바다 위에 꿈틀대고 있다.

링크스가 거친 바다의 풍랑이 육지에 연장된 지역이라면, 이곳의 바다는 곱고 푸른 모습으로 코스 안 깊숙이 들고 난다. 절벽의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다른 섬들이 성큼 다가와 눈을 맞춘다.

바닷가에 ‘모던 링크스’를 만드는 일이 전통적 링크스 코스의 요소들을 현대적 관점과 기술로 재해석·조합하는 ‘스타일리스트의 작업’이라 한다면, 이렇게 독특한 자리에서 고유한 생명력을 살려낸 코스를 빚는 작업은 (성공한다면)골프코스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험 예술이 될 수도 있겠다.

링크스를 고집하지 않고 땅의 경외감을 살려...

카일 필립스는 이 코스에서 링크스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다. 링크스의 요소들을 바탕에 적용하기는 했으나, 땅이 가진 특장점을 살려내는 한편 휴양지 리조트 코스로서의 평화로운 느낌을 주려 노력한 듯하다.

무엇보다도 이 천혜의 지형에서 나올 수 있는 경외감 넘치는 클리프탑 홀들을 먼저 찾아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바다를 향해 내리치는 14번 파3 홀과 바다를 건너 치는 16번 파3 홀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홀들을 붙박이로 두고 코스의 흐름을 잡아나갔다.

카일 필립스의 설계를 받아 한국 법규에 맞게 ‘실시 설계’한 코스 설계가 유창현 씨는 이렇게 말했다.

“모던 링크스의 대가라 불리는 카일 필립스의 설계 철학과 기술적 특징이 지형에 잘 스며든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견고하고 난도와 샷밸류가 조화롭습니다. 조형의 디테일도 최신 트렌드를 완성도 높게 반영했고, 기억에 남는 시그니처 홀들도 훌륭히 조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다를 등지는 어드레스

한국 골프코스 설계가 송호 씨는 다른 의견을 말한다.

“한국 최고 풍광의 코스가 나올만한 곳이고 세계에서도 이런 골프코스 부지는 찾기 힘듭니다. 그런데 홀의 진행이 시계방향이라서 대개의 홀들에서 바다를 등지고 어드레스 하게 됩니다. 페블비치나 사이프러스 포인트처럼 바다를 보면서 맞서고 바다와 일체감 속에서 라운드하는 느낌이 들지 않죠. 루트플랜을 반대 방향으로 잡았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마지막 홀에서 역광으로 클럽하우스 너머의 해를 마주 보며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도 좀 아쉽습니다.”

처음에는 시계 반대 방향 진행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소유주는 언론 인터뷰 기사(한국경제 22.06.09)에서 그 사연을 말했다. 카일 필립스가 설계를 완성해 놓고 나서 고민하다가, “16번 파3 홀을 제대로 살리고 싶다. 그러려면 반대 방향으로 코스가 진행되도록 재설계해야 한다”며 변경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설계자는 ‘한국에서 가장 멋진 시그니처 홀’이 나올 거라며 권했다고 한다.

 

‘볼레로(Bolero)’가 연주되는 듯한 구간

16번 홀을 지금 모습으로 살려낸 데 동의하지만, 바다 접한 홀에서 바다를 등지고 어드레스 하게 된 아쉬움은 남는다.

다만, 11번 홀부터 16번 홀까지 바다 조망 홀들이 잇달아 펼쳐지는 흐름은, 그런 어색함을 저으기 덜어낸다. 페어웨이에서는 바다를 등지고 어드레스 하더라도, 그린을 향해 가면서 시야 가득히 바다를 담게 되는 홀들이다. 티잉 구역에서 내리막 티샷 하도록 조성하여 바다가 더욱 장려하게 다가온다.

내리막 샷 홀들이 변주되는 가운데 페어웨이와 그린에 약간의 오르막이 교차하는 리듬 속에서, 몸은 바다를 향해 내려가고 시각적 감흥은 점점 상승하는 극적 구간을 만들어놓았다. 마치 라벨(Maurice Ravel)의 춤곡 ‘볼레로’가 연주되는 듯, 기분이 끝없이 관능적으로 점층하며 고양된다. 이곳 지형에 흐르는 리듬과 선율을 인상적으로 살려낸 구성이다

14번 홀과 16번 홀에 대하여

바다를 건너 치는 16번 파3 홀이 이 코스의 시그니처 홀로 꼽히지만, 14번 파3 홀에 더 매료된 이들도 있다. 16번 홀은 미국 골프 다이제스트가 “사이프러스 포인트 16번 파3 홀의 경치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으며, 14번 홀은 “페블비치골프링크스 7번 홀과 비슷하다” 또는 “아름답기로는 그보다 낫다”는 평도 듣는다.

이 홀들이 인상적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글 들머리에서 적었듯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치기 때문이다

16번 홀은 높은 언덕의 티잉 구역에서 까마득한 벼랑 아래 바다의 조각배 같은 그린을 향해 180미터(블루티) 거리 티샷을 하게 된다. 이런 경험을 다른 어디서 하겠는가.

다만, 이 홀의 메인 티잉 구역(블루티)에서 보면 그린 너머에 장군산 곶이 바다를 절반쯤 가리고 있다. 레드티에서는 그린 너머에 바다가 거침없이 펼쳐지기에 - 아슬아슬하게 내려다보는 느낌은 다소 덜하지만 - 바다 한가운데 뜬 그린으로 티샷하는 느낌이 좀 더 살아난다.

14번은 내리막으로 바다를 향하는 짧은 파3 홀이다. 바닷바람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기에 짧은 채로 공을 높이 띄울수록 더 어려워지는 ‘짧은 홀의 역설’이 지배하는 자리다.

홀인원이라도 할 수 있을 듯 가까워 보이지만 더블보기 이상의 결과도 숨어있다. 플레이의 전략성, 독립적인 조형미, 전체 코스 흐름 속의 위치와 존재감도 두루 빼어난 홀이다.

티잉 구역에서 보면 15미터쯤 내리막 아래, 꽃봉오리 모양으로 벋은 반도형 그린이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다. 수억 년 전 형성된 퇴적암 벼랑이 수천 년 동안 파도에 깎이며 그린을 받치고 있다.그린은 정면으로 문을 열다가 잘록한 벼랑에서 두 시 방향으로 뒤척여 샷밸류를 높인다. 바람이 불면 아름다움이 위태로움으로 돌변한다. 천연의 반도에 프리스타일 벙커와 소나무로 간결히 마무리한 – 숨 막히게 섬세한 조형이다.

14번 홀 비슷한 모양의 홀들은 세상에 더러 있다. 하지만 이 홀은 인공적 디자인의 완성도가 자연의 경외감을 북돋워 고유성을 얻은 예로 보인다.

이와 달리 16번 홀은 ‘자연이 준 독보적인 선물’이랄 만하다. 이 고유한 홀을 위해 전체 코스 설계를 변경한 마음을, 얼마간 이해한다.

바다를 마주보는 어드레스는 진정 불가했을까

살펴보면, 16번과 14번 홀들을 살리면서도 바다를 마주 보며 어드레스 하며 진행하는 코스를 만들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홀들을 후반의 클라이맥스 구간에 배치하려면 지금의 (시계방향) 진행이 편했을 것이다. 14번 짧은 파3 홀의 애틋함과 16번 긴 파3 홀의 장엄한 모험은, 서로를 절박하게 끌어당기는 밀접함 속에서 극적 완결성을 갖는다.

두 홀을 잇는 15번 홀이 깊은 만(Bay, 灣)을 돌아가는 영웅적 도그렉 형이라서, 14-15-16번 홀들을 이 코스의 ‘트로이카(тройка, 삼두마차)’라 부른다고 한다. 설계자가 후반에 배치하고파 했을 만한 클라이맥스 구간이다..

클럽하우스와 리조트 위치를 전체 부지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우선 정한 뒤에, 나머지 자리에 코스를 배치한 것 같기도 하다. ‘클리프하우스’ 별장들이 있는 고새머리산과 남동쪽 곶의 장군산 원형보존림의 클리프탑 지대를 적극적으로 코스에 활용했다면 - 바다를 안고 어드레스하며 진행함은 물론 - 더욱 경외감 넘치는 홀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골프코스 보다는 빼어난 전망의 세계적 휴양 리조트를 만드는 데 주요한 지향점을 두었던 것 아닌가 싶다.

전반과 후반 - 그 차이와 연결

후반 홀들이 천혜의 해안 지형을 활용하여 바다와 적극적으로 감응하려는 모습인데 견주어, 전반 코스에는 다양한 전략적 특징을 지닌 홀들을 배치함으로써 골프의 게임 기능을 충족하고 있다.

코스 설계의 정석을 따르듯 무난한 홀들로 전개되다가, 5번 파5 홀이 강렬한 모습으로 중심을 잡는다. 상하좌우 삼중 지형 비틀림으로 용틀임하다가 바다 절벽으로 오르는 클리프탑 홀인데, 티샷부터 세컨샷, 그린 주변까지 전략적 샷 기량을 흥미진진하게 시험한다. 작은 만(Bay)을 활용하여 바다를 건너 치는 6번 파3 홀은 도전적이면서도 호젓하다. 이 두 개 홀이 서쪽 끝에서 코스 전체의 긴장감을 조율하고 있다.

다만, 전반 코스에는 기시감이 드는 홀들도 있다. 5번 6번 홀의 자연 생명력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해발 70미터 등성이를 타고 가는) 9번 홀의 역동성으로 거침없이 연결되었다면, 후반 홀들의 미학적 상승감이 더욱 고조되었을 텐데, 7번 8번 홀에서 다소 느슨해졌다가 넘어간 듯하다. (이 두 홀은 기능적으로 훌륭하지만, 이곳 자연의 고유한 맥동에 맞서도록 했다기보다는 설계자의 도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후반 코스에 넘치는 생명감과 대칭을 이루는 팽팽함이 덜하다고 할까.

모험과 평화로움의 결합, 스타일리시 디테일

코스의 난도는 높다기보다는 적절하다. 코스 전체에서 벙커나 디프레션, 마운드, 언듈레이션과 페널티 구역 등 장해 요소들을 많이 배치하지 않았다. 정밀한 변별력을 추구하기보다는 재미를 살리는 샷 옵션을 제공함으로써, 휴양지 리조트 코스를 찾은 골퍼들이 적절한 모험과 평화로움을 함께 즐기도록 했다.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땅이 크게 뒤척이면서 골퍼의 공략을 피하는 듯이 설계했으며, 벙커의 위치와 형태, 그린 주변의 전략적 조형 등으로 자연스러운 변별력을 부여했다.

특히 페스큐 러프의 천연 생장 질감을 활용한 ‘벙커 입술’과 그린 콤플렉스의 생동하는 조형 등은 이곳 산과 바다의 흐름에 조응하고 있다. 세계 골프코스 트렌드를 반영한, 스타일리시한 모습이다.

“보는 사우스케이프, 찍는 사우스케이프”

이 골프장 여러 곳에는 큰 글자로 “세계 랭킹 9위, 아시아 1위 골프코스”라고 적혀 있다.

재벌 그룹이 아니면 세계적인 골프코스를 조성·유지·운영하기 어려운 한국 골프 시장 현실에서, 그리고 ‘세계 골프코스 랭킹’이 수조 달러 자산가들의 경연이 되어가는 흐름에서, 한국의 개인 소유주가 이룬 성취가 주목할 만하다.

그런 한편 이 골프장 터는 어쩌면 - 링크스도 파크랜드도 클리프탑도 아닌 - 더 진화한 가치와 형태의 골프코스가 나와야 할 자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곳 다도해와 산줄기의 생명력을 굽이굽이 찾아내 온전히 표현했다면, 굳이 ‘랭킹’을 앞세울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세상의 골퍼들이 일생에 한 번 꼭 찾아오고플 만큼 고유한 ‘데스티네이션 코스’ - 시간이 흐를수록 높게 평가될 ‘영원한 코스’도 나왔을 만한 자리 아닌가 싶다.

이 코스를 라운드 하면서, 동반자들과 이 코스에 대한 감상을 한마디씩 말하기로 했다.

라운드가 끝날 즈음 한 사람이 “이 코스에는 바닷가치고는 바람이 덜 분다. 링크스에서 바람이 일으키는 변화를 대신하려면, 벙커 장해물들을 좀 더 도전적으로 설치하고 한 홀 한 홀마다 다도해 섬들과 마주하는 이야기들을 살렸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동반자가,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 구절을 빗대어 말했다.

“치는 사우스케이프보다 보는 사우스케이프다”

이어받아 세 번째 동반자가 말했다.

“보는 사우스케이프보다 찍는 사우스케이프다”

우리는 함께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유한한 시각(視覺)과 영원한 시간(時間)

사우스케이프에서는 ‘본다’는 감각이 먼저 살아난다.

빼어난 전망을 가진 자리들과 보기 좋은 조형 시설물들이 많다. 리조트의 콘셉트를 ‘본다’와 ‘보인다’로 집약했는가 싶을 만큼 선명한 시각 경험을 잇달아 제공한다.

클럽하우스의 중정(中庭)은 이곳을 지나는 모든 흐름을 담아낸 판테온(만신전) 같다.

천정에 하늘과 시간이, 바닥에 땅과 바다가, 사방에 바람이 지나며 소용돌이처럼 머물다가 사라지는 시공간에서······ 젊은 남녀들이 연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의 사람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소멸한대도 자연스러울 광경이다.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코스의 동쪽 끝 16번 홀 지점에는 뱃머리처럼 뾰족한 ‘선라이즈(Sunrise)’, 서쪽의 5번 홀 끝 지점에는 뱃고물처럼 오목한 모양의 ‘선셋(Sunset)’ 티하우스가 있다. 일출과 일몰을 ‘보는’ 곳이다.

이름으로 해석하면, 해가 뜨고(Sunrise)와 지는(Sunset) 사이에 흐르는 것은 시간(Time)이다. 짧게는 코스를 라운드하는 네댓 시간, 이곳에서 머무는 며칠이랄 수도 있고, 길게는 바다 벼랑 퇴적층의 수억 년 세월······ 어쩌면 일출과 일몰이 교차하는 가운데 스치는 궁극적 영성의 시간일 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본다’는 감각은, 말초적 ‘SEE(見)’를 넘어 초감각적 ‘SIGHT(觀)’, 더 나아가 ‘INSIGHT(통찰)일 수도 있겠다. 그런 느낌이 드는 시공간이다.

 

※ 일부 사진 사우스케이프 제공

 

류석무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류석무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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