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형 잔디에 속하는 들잔디는 한지형 잔디에 비해 관리가 쉽고 병충해도 적으며 고온다습한 우리나라 여름철에 잘 자란다. 그래서 골프장, 주택정원, 공원을 가리지 않고 두루 사용되고 있다. 다만 한지형 잔디에 비해 녹색기간이 짧은 것이 단점이다.

들잔디는 섭씨 3~4℃ 정도에서 생육이 정지하고 서리가 내리면서 지상부 잎과 줄기는 죽는다. 휴면 시작이다. 잔디밭은 새싹이 나오는 이듬해 5월에나 녹색을 완전히 되찾는다.

그래서 3월부터 시작되는 프로스포츠 경기장에서는 보통 들잔디 대신에 한지형 잔디인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사용한다. 갈색의 죽은 잎과 줄기는 생육기보다 탄력과 회복력이 떨어져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고 TV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만족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들잔디의 녹색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한반도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겨울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일까?

현재와 과거를 비교해 보자. 1985년 서울의 한 대학(관악구) 일반토양에서 실험 진행된 논문이다. 생육개시 온도가 10℃ 이상인 들잔디는 3월 말 싹트기 시작해 4월20일부터 왕성하게 생장하면서 5월 말 경 잔디밭이 100% 녹색에 도달했다. 들잔디밭 녹색상태는 9월10일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9월20일에는 급격히 감소한다. 논문에 따르면 1985년에는 5개월 정도의 녹색기간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 15년 후인 2000년 서울(노원구)에서 진행된 실험 논문에 따르면 이른 봄 녹화 시점은 5월 1일-5월14일 사이, 가을에 휴면에 들어가는 시기는 10월28일-11월 8일 사이로 나타났다.

실험은 모래가 기본인 USGA 지반에서 진행됐다. 들잔디에 속하는 야지·중지·제니스의 녹색기간 차이는 2-6일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2000년 들잔디 녹색기간은 1985년에 비해 1개월 정도 늘어났다. 하지만 실험 조건이 동일했다면 상황은 더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1985년 실험은 양분과 수분이 많은 일반 토양에서, 2000년에는 양분과 수분 함량이 낮은 모래지반에서 이루어졌다. 결국 2000년 실험이 일반토양이었다면 녹색기간이 더 길어졌을 것이다.

그럼 1985년에 비해 2000년에는 얼마나 따뜻해졌을까? 실험이 진행됐던 서울 지역 온도를 보자. 1985년 평균기온은 11.6℃. 평균 최고기온은 16.2℃, 평균최저기온은 7.7℃였다. 반면 2000년에는 평균기온은 12.7℃. 평균최고기온은 17.1℃, 평균 최저기온은 8.6℃였다.

전체적으로 여름과 겨울 온도가 높아졌다. 다시 15년 뒤인 2015년 평균기온은 13.6℃. 평균최고기온은 18.7℃, 평균최저기온은 9.3℃였다.

2021년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30년의 여름은 20일 늘어났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 절기상 가장 추운 소한(小寒)과 대한(大寒)도 영하에서 영상으로 기온이 변했다. 앞으로 겨울이 더 짧아진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들잔디의 녹색기간이 기상 조건에 전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 잔디밭 녹색기간 연장은 1970년대부터 많은 잔디 학자들의 연구 주제가 되어 왔다.

가을철에 질소 시비를 해서 잎과 줄기를 더 진한 녹색으로 만들어 연장하거나 녹색기간이 긴 한지형 잔디 종자를 들잔디밭에 덧뿌려 겨울 잔디밭을 녹색으로 만들 수 있다.

기온이 떨어지는 밤 시간동안 피복재를 덮어 녹색기간을 연장하는 방법도 있다. 아예 녹색의 착색제를 잔디밭에 뿌려 동계기간동안 녹색으로 보이도록 하기도 한다.

잔디밭 녹색은 잔디의 유전적 특성이나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그 기간이 크게 다르다. 어느덧 주변 잔디밭에도 점점 지구온난화가 현실이 되고 있다.